프라하의 겨울, 스메타나 선율 함박눈 타고 흘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지난 달 27일 프라하 시민회관 스메타나홀에서 ‘2014 체코 음악의 해’ 기념 콘서트가 열렸다. 남아공 출신의 소프라노 프리티 옌데가 프라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사진 체코관광청]

찬란한 ‘프라하의 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프라하의 겨울’은 쓸쓸하고 어두우면서도 또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지난달 26일 오후 4시 바츨라프 하벨 프라하 공항에 내렸을 때 벌써 어둠이 내린 하늘 위로 스메타나의 그 유명한 ‘블타바 강(몰다우 강)’의 선율이 흘렀다. 체코 항공이 스메타나의 나라에 찾아온 이방인을 감싸는 환영 음악이었다. 올해는 ‘체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드르지흐 스메타나(1824~84) 탄생 190주년, 체코 음악의 상징이라 할 안토닌 드보르작(1841~1904) 탄생 163주년, 체코 음악의 현대화 주자 레오슈 야나체크(1854~1928) 탄생 16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는 ‘2014 체코 음악의 해’ 행사가 프라하를 중심으로 1년 내 펼쳐진다. 스메타나 탄생 100주년이던 1924년 시작해 '4'로 끝나는 해마다 열렸으니 올해로 10회째다. 홈페이지(www.yearofczechmusic.cz) 참조. 음악의 도시 프라하로 떠나본다.

 드문 일이라고 했다. 건조한 싸락눈이 살짝 스쳐가곤 하는 프라하에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지난달 27일 프라하 구시가 광장 548번지. 그 유명한 시청사 천문시계가 굽어보는 자리에 흰색 4층 건물이 눈을 맞고 서있었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가 1848년 스물네 살 때 처음 음악학교를 세운 이 건물은 아쉽게도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동판만 남은 채 호텔로 변해 있었다. 1850년대 프라하의 예술가들이 모여 콘서트와 전시회를 열었다는 과거는 희미해졌지만 그 전설은 음악으로, 미술 작품으로 남았다.

 프라하 관광의 시작이자 중심인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도 이 특별한 건물을 눈여겨 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가업을 잇지 않겠다는 아들에게 생활비를 끊어버린 아버지 탓에 스메타나는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음악에의 열정을 불태웠다. 그가 음악일로 생계비를 벌기위해 스웨덴으로 떠났던 눈물겨운 얘기도 이 건물 앞에 오자 실감이 났다.

 스메타나의 음악 발자취를 찾아 블타바 강변 까렐 다리 옆에 자리한 ‘스메타나 박물관’을 찾았다. 1968년 국민 모금으로 시작해 81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스메타나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말년까지 다양한 문서와 악보, 편지, 사진 등 기록물로 꾸며진 박물관에 들어서자 비로소 ‘블타바 강’의 선율이 제대로 귀를 자극했다.

 양조업을 하던 아버지의 반대로 음악 공부하기가 어려웠던 스메타나는 자신을 이해해준 큰 형의 도움으로 거의 독학하다시피 음악가의 길에 들어섰다. 피아니스트에서 작곡가로 변신하며 조국의 전통과 역사를 음악에 새겨 넣었던 그는 체코에 음악으로 국민적 정체성을 불러 일으킨 장본인이다. 민족 설화에서 이야기를 가져온 오페라 ‘팔려간 신부’, 체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교향시 ‘나의 조국’, 건국 신화를 주제로 한 오페라 ‘리부셰’는 오늘날 체코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음악’이 되었다.

 이날 저녁 7시 30분, 아르 누보 건축물로 유명한 프라하 시민회관 스메타나홀. 2014 체코 음악의 해를 선언하는 콘서트가 막을 올렸다. 체코 민족미술의 대표격인 알퐁소 무하가 디자인한 시민회관은 그 자체가 작품인 체코인의 자랑이다. 이 유서깊은 곳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초대된 이는 뜻밖에도 지난해 데뷔한 신인 여성 성악가였다. 남아공 출신의 소프라노 프리티 옌데(28)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인공이다.

 크리스토퍼 프랭클린이 지휘하는 프라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흑진주 옌데는 깊이 고개 숙여 스메타나의 음악혼에 경배했다. 자유를 위해 싸웠던 조국 남아공과 체코의 과거 역사가 겹쳐서인지 그의 노래는 후반부로 갈수록 웅혼해지고 그윽해졌다.

 올 행사의 홍보대사를 맡은 이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메조 소프라노 막달레나 코제나 부부다. 체코 출신인 코제나가 앞장 서 한 해 동안 열리는 800여 건의 음악 행사를 소개했다. 프라하의 사계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의 음악으로 가득한 보석 상자가 될 모양이다.

프라하(체코)=정재숙 문화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