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다리' 골드먼삭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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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브릭스(BRICs), 비스타(VISTA), 미스트(MIST).

 숱한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전 세계 투자자금을 빨아들이던 신흥시장이 수난을 겪고 있다. ‘달러 밀물’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 축소 와 함께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다. 연준이 테이퍼링을 처음 시사한 지난해 6월 이후 통화 가치가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는 곳은 한국·중국·멕시코 정도다.

 이들 신흥국은 2000년대 이후 선진국을 대신할 세계 경제의 ‘신형 엔진’으로 각광받았다. 최근 치르고 있는 홍역도 그간 들어왔던 투자금이 그만큼 많았다는 방증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신흥시장으로 들어간 자금은 7조 달러에 달한다.

 이런 글로벌 자금몰이의 치어리더로 나섰던 곳은 골드먼삭스다. 짐 오닐 전 골드먼삭스 자산운용 회장은 2001년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글자를 묶어 브릭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후 신흥시장을 대상으로 한 ‘짝짓기 테마’는 유행처럼 번졌다. 2006년 일본 브릭스 경제연구소가 들고나온 비스타(베트남·인도네시아·남아공·터키·아르헨티나)도 그중 하나다. 2010년 오닐 전 회장은 다시 미스트(멕시코·인도네시아·한국·터키)를 대체 주자로 내세웠다. 하지만 막상 이들 신흥국에 위기가 닥치자 골드먼삭스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딴청을 피우고 있다. “호경기 때야 신흥국도 국가마다 다른 평가를 받지만 위기 때는 다르다. 신흥시장은 다 똑같다”(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먼삭스 회장)는 것이다. 신흥시장이 이처럼 도매금으로 대우받는 건 결국 기축통화를 갖지 못한 탓이다. 선진국으로부터 달러를 조달할 수밖에 없고, 달러가 들고나는 데 따라 시장이 크게 좌우된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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