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의 추가차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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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렇지 않아도 부채가 과다하기 때문에 경영이 부실하다는 소리를 듣는 기업이 또다시 거액의 부채를 더욱 짊어진다면 기업경영은 더욱 엉망이 될 것은 정해놓은 이치다.
기업경영을 건전한 토대 위에서 정상적이고 합리적으로 꾀하는 기업과 기업가에게는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고 보니 부실기업이 부실하게 된 것도 그 까닭의 태반은 부채가 많은데도 더욱 부채를 짊어지려는 기업경영방식과 그 결정권자인 부실 기업가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재무구조가 매우 불량한 일부 부실기업이 또 거액의 차관을 신청하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분명히 이것은 기업공개 정책에 관한 5·29조치에 역행하고 부실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책을 비웃는 짓이다. 부채가 너무 많기 때문에 계열기업도 정리하고 기업가 소유부동산도 처분해야할 이 마당에 이 무슨 행태냐 말이다.
여기 분명한 것은 이러한 부실기업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금융자금공급을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차관도입을 허용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부채과다, 자기자본 과소의 재무구조를 갖는 부실기업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은행신용공여와 외자도입을 불허한다는 5·29조치에 비추어서도 추가차관은 거부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비단 재무구조가 매우 불량한 이른바 A군의 부실 업체에 대해서뿐만 아니다. 재무구조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차관도입으로 인한 추가적인 부채가 재무구조를 현저히 악화시키고, 건전한 기업활동의 기준에서 벗어날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해당하는 것이다.
종래 기업의 차관도입에서는 이점에 대해 너무 소홀하거나, 관대하였다. 차관에 대한 지급보증을 한 은행이나 외자심의당국도 차관도입후의 기업재무구조가 급격하게 악화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따지려하지 않았고, 또 따졌다 하더라도 이를 불가피시 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그 결과는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부실기업의 대량발생사태를 가져봤던 것이 아닌가.
재무구조가 부실한 기업을 건전하게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스스로가 총 자본 축적 율의 증대보다도 자기자본축적 율의 증대에 더욱 기대어야 하는 것이지만, 이와 동시에 정책이 또한 기업으로 하여금 그러한 방식을 취하도록 밀고 가야한다. 금융자금의 공급도, 그리고 차관도입도 자기자본이 부족하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자본조달의 문을 스스로 닫고있는 기업에는 이를 허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의 총 투자규모도 그저 확대만 하면 된다는 고식적 방식은 지양돼야할 것이다. 총 투자규모는 은행신용의 공여증대나 차관도입의 증대로 어느 정도 마음대로 늘릴 수 있다 하더라도 기업전체의 자기자본축적의 증가율에는 저절로 일정한 한도가 있기 때문이며, 이를 무시한 과도한 총 투자규모의 확대는 결국 개개 기업의 재무구조악화를 가져올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도 부실기업의 추가적인 차관도입을 불허하는 것이 정책쇄신의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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