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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래로가 뭐야" 집값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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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리체 아파트 단지 앞에 새로운 도로명 주소인 ‘고무래로 10길’ 간판이 달려 있다. 주민들은 “새로운 도로명이 어감이 좋지 않아 주민들이 대부분 싫어한다”면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김경록 기자]

서울 서초구 반포1동 주민들은 도로명 주소에서 반포동이 사라지고 ‘서초구 고무래로’로 바뀐 데 대해 불만이 크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주민들은 새로 명명된 망우로(忘憂路)가 공동묘지를 연상시킨다며 “전체 5.8㎞ 중 동대문구 구간 1.6㎞는 망우로 대신 왕산로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도로명 주소는 1996년 김영삼 정부 때 제도 도입 방침이 처음 결정된 이후 17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쳤지만 아직도 주민들은 적잖은 불편을 호소한다. 2011년까지 15년간 시범사업을 거치고 2012년부터 전면 시행하려 했으나 지난해까지 2년간 도로명 주소를 지번 주소와 병행 시행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주민들의 목소리를 자세히 따져보면 불편보다는 불만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경우가 많다.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도로명을 결정한 데 대해 마뜩잖아 하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런 지방자치단체의 도로명 결정에 반발해 주민들이 소송까지 내 승소한 사례도 있다. 성남시 분당구 주민 박모(63)씨 등은 판교로를 야탑남로로 변경한 고시를 무효로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해 지난달 15일 서울고법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주소는 헌법상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보호 대상”이라며 “도로명 주소를 변경하면서 주소 사용자 과반수 동의 절차를 생략한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익숙한 동 이름이 사라지면서 아파트 브랜드 효과가 반감될까 불만을 토로하는 주민도 적지 않다. 압구정동·청담동·대치동·도곡동·목동 등 이른바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 이런 반응이 많다. 부자동네이거나 교육중심지라는 이미지가 퇴색해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탁상행정도 문제다. 충북 청원군 남일면은 7월에 청주시로 통합되는데도 청원군과 청주시는 도로명 표기 방식을 고유명사 방식과 기초번호 방식으로 각각 다르게 선택해 혼란과 예산 낭비를 초래했다. 인천시의 경우처럼 로봇랜드로·크리스탈로·에메랄드로 등 외래어를 남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송경주 안전행정부 주소정책과장은 “도로명에 동과 지명 등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반영할 필요가 있으면 지역주민 논의를 거쳐 변경할 수 있다”며 “도로명주소법 시행령에 따라 도로명이 고시된 날로부터 3년이 지나 해당 도로명 주소 사용자의 5분의1 이상 동의를 받아 신청하고 도로명주소위원회 심의 후 과반수 서면 동의를 받으면 도로명 변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장세정(팀장)·신진호·최모란·고석승·조한대·이진우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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