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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진우의 저구마을 편지] 물고기 은비늘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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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남쪽 바다, 거제도의 봄은 붉은 동백꽃 떨어지는 소리로 시작됩니다. 사람의 귀에는 안 들리는 그 소리가 언 땅을 북 치듯 둥둥 칩니다. 싹을 틔운 생명에게 힘을 북돋우고, 겨울잠에 취해 있는 생명에게 깨어나라 재촉하지요. 그 소리가 작을까 걱정이었는지 거제도 사람들은 마당은 물론이고 도로 가에 줄을 지어 심어두었습니다. 아낌없이 햇살 쏟아지는 날이면 거제섬 어디서든 물고기 비늘처럼 은색으로 빛나는 동백 이파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거제도의 봄은 연초록 바다마저 은빛으로 물드는 계절입니다. 고깃배는 은가루를 뿌려놓은 바다 위를 바람처럼 스쳐갑니다. 갈매기 울음소리 메아리로 울리는 갯벌에서는 아낙네들이 쪼그리고 앉아 조개를 파며 수다를 떱니다. 새끼 밴 암소가 되새김질을 하는 것만 보아도 부자가 된 남정네들은 바닷가 논에서 경운기를 몹니다. 부쩍 자라 봄옷이 꽉 끼는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노느라 집에 더디 옵니다. 아마 거제도 아이들이 봄소식은 제일 잘 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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