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戰 초읽기] 부시 "테러 차단 예방전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7일 미국민과 전 세계에 전쟁을 시작한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이날 오후 8시(현지시간)부터 15분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한 '대국민 연설'을 통해서다.

이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이 쫓겨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전 세계의 테러 위협은 줄어든다"면서 이라크전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라크가 그동안 얼마나 국제사회의 룰을 어겨왔는지에 대해서도 장황한 설명을 덧붙였다.

부시 대통령은 또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동맹국과 유엔의 무능을 질타하고, 후세인을 히틀러에 비유하면서 독자적으로 전쟁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논리를 내세웠다.

"미국의 국익이 침해받을 가능성이 있으면 언제든지 '예방전쟁(pre-emptive war)'이 가능하다"는 이른바 '부시 독트린', 즉 선제공격론을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한 유엔의 무력화와 동맹관계의 분열 등 향후 국제사회가 당면할 갈등과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부시 독트린'선언=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은 힘이 강해지면 다른 나라를 공격할 것" "테러국가들로부터 공격을 당한 뒤에 대응하는 것은 자위(自衛)가 아니라 자살"이라고 주장했다.

공격을 당하기 전에 공격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예방전쟁이 미국 외교의 중심개념이 될 것임을 확인한 것으로 북한과 관련해서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부시 대통령은 또 이라크의 전과(前過)를 열거하면서 미국이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라크는 1991년 걸프전 종전 때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하기로 약속했지만 그 후 12년간 유엔 사찰단을 기만해 왔고, 테러 집단에 무기와 은신처도 제공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부시 대통령은 "20세기에 일부(지도자)가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다가 결국 세계대전과 대학살을 불러왔다"면서 제2차 세계대전 직전 프랑스와 영국 정치 지도자들이 히틀러를 상대로 유화정책을 폈던 사실을 지적했다.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유엔 안보리가 책임을 다 안하면 우리라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버드대 스탠리 호프먼 교수는 "유엔헌장에는 부시 대통령이 밝힌 것처럼 미래를 예상해 방어한다는 개념이 없다"면서 우려를 표시했다. 조셉 나이 하버드 케네디 스쿨 학장도 "정당성보다 군사적 효율성만 추구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후세인과 이라크국민 구별=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국민에게 "독재자는 쫓겨갈 것이며 당신들의 해방은 가까워지고 있다"면서 "연합군은 자유롭고 번영하는 이라크가 건설되는 것을 돕고, 식량과 의료품을 공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라크 군인들에게는 "연합군이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도록 도와달라"면서 "사멸해가는 정권을 위해 목숨을 버릴 필요가 없다"고 회유했다.

이와 함께 "명령대로 했다는 건 변명이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거나 유전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말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공화당 지도부는 "미국이 이라크에 무작정 지원을 약속하면 훗날 발목이 잡힌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라고 미 언론이 전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 부시의 이라크공격 이유

(1)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를 완전 폐기한다는 조건으로 걸프전을 끝냈으나 그 뒤 약속을 안 지켰다.

(2) 이라크 정부는 유엔 무기 사찰단을 도청하고 속였다.

(3) 이라크는 알 카에다를 포함한 테러 집단을 지원하고, 훈련시키고, 피난처를 제공해왔다. 테러 집단들은 이라크 도움으로 생물.화학무기는 물론 핵무기까지 갖게 될 것이다.

(4) 사담 후세인은 군사력이 강해지면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를 공격할 것이다. 따라서 공격받기 전에 무력화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