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내 비둘기파 기수 「풀브라이트」의 퇴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워싱턴=김영희특파원】미국 의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사람 하면 흔히 상원의 「풀브라이트」, 하원의 「윌버·밀즈」(세출위원장)를 꼽는다. 「풀브라이트」는 상원외교위원장으로 대외정책에서는 국무장관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 「입법적의 국방장관」이란 「닉네임」을 들었다.
매년 예산심의 때가 되면 그는 외원 삭감·군수폐지를 주장, 한국·월남·「이스라엘」태국 같은 수원국들의 가슴을 죄게 해 왔다.
29일 실시된 「아칸소」주의 상원민주당 예선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끈 것도 「풀브라이트」의 정치적 운명에 세계각국의 이해가 얽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태인의 표를 의식한 의회가 온통 소련의 유태인학대를 비난하고 유태인에 대한 완화정책을 미·소 「데탕트」의 전시조건으로 주장하는 판국에서 「풀브라이트」는 소련의 유태인정책은 어디까지나 내정이라는 「키신저」의 입장을 지지하고 미 의회가 유대인들 손에 지배되고 있다고 개탄하는 용기를 보였던 사람이다.
그러나 「풀브라이트」는▲「워터게이트」사건이 상징하는 미국사람들의 정치적인 좌절감 ▲의회와 행정부에 대한 불신감 ▲그가 30년의 오랜 세월을 「워싱턴」에서 보내는 동안 선거구에서 일어난 변화가 몰고 온 도전을 극복하지 못하고 4년 전「풀브라이트」자신의 지원으로 「원드몹·록펠러」를 누르고 「아칸소」주 지사에 당선된 「범퍼즈」라는 정치초년생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외교정책에 관한 한 「풀브라이트」낙선은 웬만한 정권교체만큼이나 중요성을 갖는다.
그의 낙선은 「닉슨」행정부에는 「인도차이나」정책과 중동정책의 강력한 비판의 소리 하나가 침묵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는 「존슨」 행정부 때부터 행정부의 냉전의 심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미국의 국익의 정의에서는 항상 백악관이나 국무성과 충돌했다.
그러나 「풀브라이트」의 낙선은 「닉슨」행정부의 긴장완화정책, 특히 소련과의 「데탕트」노선에 대한 가장 열렬한 지지자의 퇴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풀브라이트」의원은 선거운동자금을 「범퍼즈」의 3배나 썼다. 이 나라 금융계가 「풀브라이트」의 낙선을 방지하기 위해서 거액의 자금을 헌금했다. 「풀브라이트」가 재선되지 않으면 상원외교관계위의장자리는 금융계의 총아라는 지금의 재정위원장 「존·스파크먼」에게로 넘어가고 재정위원장자리는 「프록시마이어」가 계승하게 된다. 자유주의자인 「프록시마이어」의 재정위원장취임을 꺼리는 재계로부터 「풀브라이트」는 뜻밖의 자금지원을 받았던 것이다.
「풀브라이트」후임이 예상대로 「스마크먼」의원이 된다면 외교정책, 특히 미국의 방위의무나 대외원조를 다루는 외교위원회의 분위기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고 「키신저」는 당분간 상원에서 고독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만약 「프록시마이어」를 꺼리는 재계의 영향을 받아 「스파그먼」의원이 외교위원회의장자리를 사양하면 그 자리는 「프램크·처치」의원에게로 넘어간다. 「처치」의원의 영향력은 「풀브라이트」를 따르지 못하지만 대외원조 반대라는 입장은 「풀브라이트」못지 않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