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거래 실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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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과 신용카드사의 부실 우려로 촉발된 채권시장의 마비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17일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지만 채권시장을 정상으로 되돌리지 못했다.

채권시장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카드채는 물론 회사채 발행까지 위축돼 시중에 돈은 넘치는데 기업들은 자금난을 겪는 자금왜곡 현상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18일 채권시장에서는 일부 카드채의 금리가 시장금리보다 무려 4%포인트 이상 치솟았고, 회사채의 거래도 거의 중단됐다.

A신용카드사 채권 중 만기가 1년3개월 남은 것은 9.2%에 거래가 됐고, 나머지 팔려고 내놓은 금리도 9%를 넘어섰다. 이날 1년짜리 국고채 금리는 4.98%였다.

동양증권 김병철 채권팀장은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으로 카드채에 대한 신용위험이 금리상승으로 전가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면서 "금리가 높아졌음에도(가격이 싸졌는데도) 수요는 없다"고 말했다.

카드채에 대한 불신이 수그러들지 않자 8개 전업 신용카드사 사장들은 이날 오후 금융감독위원회를 방문해 경영정상화 설명회를 열었다. 증자와 후순위채 발행 등 총 2조원 규모의 자본을 확충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재정경제부 변양호 금융정책국장도 기자들을 만나 "카드사는 대주주가 든든해 부도날 위험이 없다"며 "카드사의 채권이나 기업어음(CP)의 차환발행이 어려울 경우 정부가 인수를 주선하겠다"면서 채권시장의 불안심리 진화에 나섰다.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카드사 대주주들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과 은행 등 기관투자가들의 카드채 매입만이 시장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년간 무려 3조6천억원의 이익을 냈던 카드사들이 2조원 규모의 증자를 한다는 것은 자구책으로는 미흡하기 때문에 대주주들이 채권 매입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채권팀 관계자는 "정부대책으로 신용위험을 어느 정도 줄일 수는 있지만 연체율 상승이나 유동성 부족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빠졌다"며 실질적으로 채권 매입을 늘리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현재 카드사의 부실채권은 2조1천억원으로 2001년 말(5천억원)보다 1조6천억원이 늘어났고, 올 상반기까지는 부실채권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카드사들은 오는 5월부터 현금서비스 수수료를 연 2~3%포인트 인상하고 연회비 면제 회원에게서도 회비를 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송상훈.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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