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의 귀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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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역의 봄에 고리의 겨울을 생각한다고 읊은 어느 시인의 심정은 오늘날 선진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의 심정에 통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떠나온 고국의 형편이 겨울처럼 춥고 어둡고 어설픈 것이라면 바로 그럴수록 유학 온 객지의 앞선 문물의 혜택은 한결 고맙게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반면 지금 손님으로 와있는 이웃나라의 형편이 푸짐하고 넉넉하고 자유스러우면 그럴수록 더욱 두고 온 고국의 어려운 형편에 대한 인식도 몸에 사무치고 새삼스러워질 것이다.
앞서 외국에 나가 공부하게 되면 누구보다도 고국의 뒤진 현실을 투철하게 생각하고 그럼으로써 돌아와 제 고장의 후진성을 탈피하는 쇄신자가 되리라는 기대 속에서 유학생을 보내고 유학생은 떠난다.
그러나 이같은 사회일반의 기대와는 달리 우리나라 유학생의 상당한 숫자가 외국에서 그들의 공부를 마친 다음에도 계속 들어오지 않은 채 주저앉고 있다. 그럼으로써 해외유학은 결과적으로 해외이민이 되고 만다.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이요, 개인적으로도 행복스런 일은 못된다.
선진국의 앞선 학문과 기술을 배움으로써 돌아와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두뇌들이 돌아오지 않고 외국에 있다하는 것은 재산의 해외유출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인재의 해외유출이 된다.
당자들의 처지로선 주저앉고 있는 객지의 환경여건이 비록 고국의 그것에 비해 쾌적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제것이라 할수는 없다. 손은 끝내 손인 것이다. 세든 집 몸체가 아무리 화려 웅장하다 하더라도 그건 세든 사람의 것은 아니다. 고국에서 이탈하고 객지에도 동화 못하는 장기 해외거주자란 세계인이 아니라 정신적인 무국적자요, 국제적인 부랑인이라 할수밖에 없다.
더우기 차나 좀 몰고 다니고 봉급 푼이나 낫게 받을 수 있다는 얕은 생각에서 공부를 마친 뒤도 직장 때문에 외국에 계속 체류한다는 것은 그 유학생을 위해서 그동안 계속한 고국의 사회적 투자와 사회적 기대에 대한 배신행위라 해서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일본의 근대화는 명치이래 그 많은 유학생 등이 해외에 나가 공부를 하고서도 거의 전원 귀국하여 국가발전에 제나름의 기여를 함으로써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 나라 유학생들은 명심하여야 될 것이다.
중동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랍」의 학생은 군병을 기피하느라 숨어버리고, 「이스라엘」유학생들은 지원병으로 입대하느라 강의실에서 자취를 감춘다는 얘기도 해외유학생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연구시설이나 대우가 나쁘기 때문에 귀국할 수 없다는 것도 구차한 변명이다. 훌륭한 학자나 기술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시설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고 똑똑한 학자나 기술자의 발언이 약하기 때문에 대우도 개선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는가.
남의 나라에서 남이 다 마련해준 좋은 시설, 좋은 대우를 누리는 수혜자. 소비자가 되는 것이 유학의 목적은 아니었을 줄 안다. 남의 나라에는 있어도 제 나라에는 없는 것을 끌어 들여오고 만들어 내는 개척자. 새 신자·생산자가 되는 것이 유학의 보람이요, 바로 삶의 보람은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어설프고 가난해도 제 고장 밖에는 없다.
정부에서는 자연계 유학생에겐 3급 이상의 공무원·기업체간부·대학교수 등의 자리를 마련하여 귀국을 권장하리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혜택이 있건 없건 간에 아랑곳없이 모든 유학생들은 공부를 마치면 반드시 고국에 돌아와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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