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세대로의 권력 이양 위한 포석-중공 등소평 정상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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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반세기에 걸친 주은래(76)중공수상의 권력행사가 최근 등소평(70) 부수상에게로 점차 이행되는 조짐이 주의 관례적인 의전절차 불참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지난7일 「레오폴드·상고르」「세네갈」대통령 환영연을 위시하여 5차에 걸쳐 주은래가 마땅히 참석해야할 공석에 불참하면서 등소평이 그를 대항하는 「패턴」이 잦아짐에 따라 주가 권한의 일부를 등에게 점차 이양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했다.
지난 수년간 외국수뇌들이 중공을 방문할 때 빠짐없이 그의 전 행사를 주가 주재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등이 대리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 것이며, 특히 7일 밤 「상고르」대통령 환영연때 이선념 부수상이 주를 대항한 것을 빼고 주가 불참한 다른 행사는 모두 등이 대행했다는 사실을 서방측 「업저버」들은 관심 있게 주목했다.

<의전행사 거의 등이 대행>
물론 이러한 사실은 주의 변명대로 노령 때문에 그가 주선된 중대문제에만 전념하기 위한 방편으로 볼 수도 있다. 공항영접이나 「리셉션」등에는 참석치 않았다 해도 외국 수뇌와의 회담만은 주 자신이 꼭 참석, 주선했다는 것은 여전히 그가 국가 중요정무를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주가 ①2월말 「카운다」「잼비아」대통령과 「부메디엔」「알제리」대통령의 지방여행 때 그의 통례적인 동반안내를 등소평·이선념 두 부수상에게 각각 맡겼고 ②4월 중순 「유엔」자원 특총에 등소평을 파견, 등이 중공의 새로운 세계전략인 『제3세계론』을 제창케 함으로써 특히 등을 크게 부각시켰으며 ③최근의 의전행사를 등을 대행시킨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 것은 제2의 문혁으로 끊임없는 풍설과 억측을 자아내고 있는 『비림비공』의 와중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공의 권력 상층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모·주」이후의 후계, 중공권력구조를 겨냥한 오랜 기간 조심스러우나 주도면밀한 계획의 일환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
그런 필요성은 중공의 혁명세대가 노쇠기에 접어들었고 혁명의 영속화를 강력히 바라는 모택동이 「스탈린」사후의 소련과 같은 전철을 밟게 하지 않으려는 데서 요구되고 있다.

<모, 정권의 안정화바라>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배경은 모의 정치철학인 『모순론』과 연안시절 그가 갈파했던 『정권은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테제」이다.
모는 정권이 안정화되어 관료주의로 경직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유소기 등의 실권파를 제거하기 위해 군부를 업고 문화혁명을 성공시킨바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는 군부에 뼈아픈 양보를 해야만했다. 즉 국방상 임표가 구전대회에서 헌법에 그의 후계자로 명문화되는 것을 감내해야 했고, 또 군관구 사령들에게 성당의 제1서기직을 겸직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모가 군에 대한상의 우위를 주장해 온 것을 상기한다면 그의 사후 영구혁명을 위해 정권을 총구에서 안전한 위치에 두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으리란 것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이같은 무력 공포증은 ▲20세기초 열강이 중국을 잠식할 때 군벌이 부린 횡포 ▲문혁 때 지방군 관 구 사령들의 반발로 상당한 곤욕을 치른 경험 ▲무엇보다도 결정타는 『임표 사건』의 망령에 대한 반작용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중국의 역대개·창주들이 무장공신제거를 급선무로 했다는 전통에서도 나타난다.
『총구에 의한 정권의 피탈 공포』에서 무리 없이 벗어남으로써 정권을 혁명의 제2 세대에 물려 줄 가교를 모와 주는 『비림비공』을 통해 다지려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작업은 군부와 소수의 반당수정주의자들을 약화·제거시키면서 궁극적으로는 왕홍문(38)·장춘교(57) 요문원(43) 등 문혁세대에 정권을 물려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과도적으로 등소평에게 행정수반 역할을 맡기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신세대 위한 잠정적 후견>
모·주는 구전대회에서 이미 무명의 왕홍문을 당 서열 3위로 부상시키고 신진을 대거 정치국원에 기용했지만. 이들이 모 사후 과연 정부·군부·당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갈지 염려되고 있었던 것이다.
「신세대」를 위해 잠정적인 후견인을 내세울 필요가 있다고 느낀 모·주는 제2의 문혁 『비림비공』을 통해 혁명의식을 한층 고취시키면서 군관구 사령들의 재배치를 통해 군벌과 다름없는 그들의 세력 근거지를 박탈했고, 아울러 당 제1서기직에서도 해임시켜 『총구』의 현저한 세력약화를 도모했다.
임표 사건 이후 공석이된 국방부장과 각 군 참모총장 등을 메우지 않는 것도 모·주 사후에 이들이 강력한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으로 풀이되며 최근 군 정치부 주임이며 당 부주석인 심양관구사령 이덕생(60)등이 대자보에서 호된 비난을 받았던 것도 같은 이유로 보인다.

<등의 협상 조직력 인정>
그렇다면 문혁 때 실권파로 지목돼 추방했던 등소평을 굳이 복권시켜 부상시키는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문혁 이후 현저하게 약화된 당을 재정비 강화하면서 군과 정부를 다같이 속계시킬 수 있는 인물로는 등이 가장 적격으로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과거에 소련과의 이념투쟁에 직접 참여, 풍부한 경험을 쌓은 협상과 조직의 명수로 평가받는 등의 경륜이 필요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모는 작년4월 등을 부수상으로 기용한데 이어 지난11일 「부토」「파키스탄」수상을 만났을 때는 주와 왕홍문이 배석했는데도 등을 다른 때 같으면 주가 앉던 모의 우측석(상석을 의미)에 앉게 하여 새로운 사태의 발전을 강력히 시준케 했다.
이러한 모든 사설을 종합해 불때 그동안 그 정체가 아리송했던 『비림비공』운동이 특정인의 탈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혁명 제2세대의 수권태세를 정비하기 위한 다각적인 작업의 일환임을 명료케 해주었으며. 따라서 등소평의 부상은 「후계수습」작업이 일으킬 위험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모의 영구혁명을 보다 원만하게 승계 하려는 원대한 포석이라고 보아야할 것 같다. <이수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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