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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에 재료 난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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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술이 재료에 의하여 표현되는 예술형식이라면 오늘날 한국의 미술계는 절박한 재료 난에 직면해 있다. 보다 좋은 재료를 가지고 보다 훌륭한 예술품을 만들고 싶고, 그래서 영구보존 되길 희망하지만 막상 국산품이란 저질의 대용품정도. 외국산의 좋은 재료는 높은 관세를 물거나 금수 품이다. 「오일」파동 이후 재료의 품귀 때문에 값비싼 것도 구하기 어렵게됐다.
한국미술협회는 작년 1월 문공부에「회 구류 조달에 대한 건의」를 제기한바 있으나 그 반향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또 금년에는 문화예술진흥원에 의하여 미술회관이 개설되면서 미술가가 필요로 하는 재료점포를 두어 자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직 점포계획이 구체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속단할 순 없으나「전문가용재료」를 얼만 큼 값싸게 공급해 줄지는 사실상 의문이다.
현재 시판되고있는 국산 미술재료는 전문가들이 사용하기를 기피한다는데 재료 난의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즉 국산품은 저질품인데다가 규격도 안 맞아 곧 학생들의 연습용에 불과하다. 기성작가들은 대체로 외국산을 사용하는데, 그 외제는 그때그때 구할 수도 없거니와 더러 암거래되는 것은 굉장한 고가.
그래서 미술가들은 해외여행에서 돌아 올적마다 필요한 외제재료를 사오기가 바쁘다. 근년 정부가 주선하는 기록화제작에 작가들이 몰려드는 이유 중에는 그런 외제를 넉넉히 지급한다는 실리도 포함돼있다는 것이다.
서양화「오일·칼라」의 경우 「알파」·「루벤스」·「아루스」등 3개회사의 국산품이 있다. 그런데 이「오일」들은 전문적인 회화재료로서 생산되는 게 아니고 일반「페인트」생산에 부수되는 정도. 따라서 정제가 덜되어 맑지도 못하고 걸며 특히 퇴색이 심하고 밀착성이 약해 영구보존상 문제가 크다.
「오일·칼라」의 연간 수입량은 약 5천「세트」(270cc)로 추산되는데 기성용 작품의 90%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외제를 구해 사용하는 실정이다.「오일·칼라」는 비록 화장품과 동률의 높은 관세를 내고서라도 수입품으로 돼있지만「캔버스」는 아예 일반 면직 류로 취급돼 금수 품이다. 그럼에도 연 2백권(10m짜리) 정도의 외제가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것은 모두 특별만 탁송이나 여행자의 휴대품인 까닭에 상점에는 거의 나돌지 않는다. 사실 기성작가들은 국산「캔버스」를 꺼려해 95%이상이 외제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국산 화포는 기성면포에다 아교와 아연화 칠을 하거나 혹은 세마 조각에 다 칠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워낙 소규모의 영세수공품인데다가 폭넓은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캔버스」대량생산은 가능하지만 전체수요가 적어 채산이 안 맞고 또 아직은 국내기술이 부족해 대량생산이란 까마득한 형편이다.
그밖에 유화에 필요한「테레핀」「리스트」「다불로」등등의 유류는 국산이 전무. 붓·「팔레트·나이프」에 있어서는 국산도 웬만큼 좋아졌다고 하지만 역시 탄력이 부족하고 뻣뻣하다는 평판이다. 또「포스터·칼라」나 동양화용 채색도 마찬가지다. 색상이 정확치 못하고 퇴색이 빨라 전문가들은 외제에 의존하려 한다.
그러면 가장 전통적이고 일반성을 지닌 서예에 있어서의 재료는 만족할만한 것인가? 그러나 실제 서예 계의 고충도 회화의 경우와 조금도 다른바가 없다.
우선 화선지에 있어서 국산은 발묵이 잘 안되고 지면이 거칠어 전문가들은 역시 외제라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즉 국산화선지는 국내공급 품을 등한히 다뤄 묵색이 덜 나고 갈필이나 비백이 얼마안가서 없어진다. 특히 지질이 나빠서 재배접이 곤란하며 종이가 이내 삭는다.
먹에 있어서도 영세가내수공으로 생산되는 국산이기 때문에 질의 향상이 꾀해지지 않고 있다.
또한 모필에 있어서도 똑같은 문제점을 안고있다. 서예가 김응현씨는『국산재료의 질적 향상은 제작자에겐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므로 전날 이 왕실 미술공장 같은 것을 설치하는 것이 오늘의 미술진흥의 첫 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양화가 문학진씨는『재료의 개선, 구득의 편의, 보존의 실제 등 개인의 힘으로 해낼 수 없는 제작과 연구활동의 여건을 뒷받침하는데 문예진흥사업의 기본 방향이 세워져야한다』고 지적한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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