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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전시] 쇠붙이로 그린 한국화 … 그리고 작가 8명의 풍경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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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 성균관대 교수의 철 조각들이 한옥 전시장 조명 아래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림자와 물건은 중첩되는 다른 선을 만들어 내면서 서걱거리는 바람 소리를 들려준다. 한 폭의 수묵화같이 보인다”고 작가는 말한다. [사진 학고재]

철로 만든 난초·대나무·매화가 벽에 걸려 그림자를 드리운다. 한옥 갤러리 안쪽엔 철로 용접해 만든 반야심경을 배경으로 철제 배가 놓였다. 반야용선(般若龍船), 어지러운 세상을 넘어 극락정토로 가려고 탄다는 불교 설화 속 배다.

 조환(56) 성균관대 교수가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한국화가인 조 교수는 6년 전부터 붓 대신 용접기를 잡았다. 자투리 쇠붙이를 모아 자르고 잇기를 반복했다. 재료의 구속을 벗어나 ‘정신’을 표현하겠다는 의지였다. 젊은 시절 세운상가 용접공장에서 조수로 일해본 덕분일까. 청계천을 돌다가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철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온 게 시작이었다. 녹슨 철판이 보여주는 힘은 잘 단련된 붓질에서 생동하는 기운과 통할 것도 같다. 그림자처럼 가볍게 걸려 있는 철조 20점, 서예 두 점이 정초의 정취를 한껏 자아낸다. 다음달 9일까지. 02-720-1524.

 인근 금호미술관에서는 회화, 그 중에서도 풍경화만으로 전시를 꾸몄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된 공성훈, ‘설악산 화가’ 김종학, 양평에서 그림 그리는 민정기, 공주의 임동식, 그리고 김보희·김현정·황지윤·허수영 씨 등 8명의 화가가 오늘날의 풍경을 보여준다. 다음달 9일까지 열리는 ‘경계의 회화’전이다.

 회화의 역사는 곧 자연 모방의 역사다. 때문에 풍경화라고 하면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구태의연한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화가에겐 발 딛고 있는 현실과 가장 가깝고, 관객에겐 함께 체험하는 듯한 공감을 쉽게 이끌어내는 장르다. 원근법을 무시해 추상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울긋불긋 야생화 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김종학, 어딘가 음울하고 불온한 ‘사건으로서의 풍경’을 제시하는 공성훈, 고지도와 전통 회화에 기반한 민정기의 ‘청령포 관음송’‘벽계구곡도’ 등 전시작들은 8인8색의 익숙한 듯 참신한 미감을 보여준다. 02-720-5114.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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