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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트」의 사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빌리·브란트」 서독 수상은 그야말로 깨끗이 물러났다. 개인 정치 보좌관인 「길라우메」의 간첩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진 것이다. 한 나라의 최고권부속에 그것도 수상의 오른팔 격인 자리에 간첩이 앉아 있었던 것은 씻을 수 없는 정치적 과오이다.
「빌리·브란튼」에 대한 평가에는 물론 논란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우선 그가 내건 동방 정책이 바로 각 내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브란트의 후임으로 지명된 「슈미트」 재상도 그런 「네거티브」한 입장에 설 정도였다.
『하나의「유럽」』을 표방하는 EC문제에 관해서도 말이 많았다. 「브란트」는 결국 용두사미의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EC의 진노에 구름을 안겨 주었다.
『외정에 대인, 내정에 소인』이란 평가도 브란트 수상에겐 아픈 상처였다. 금년 초에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그의 인기는 겨우 38%로 기록되었다. 이것은 1년 전 57%에 바하면 치명적인 전락을 의미한다. 그가 집권한 이래 이런「인기 최저」는 일찍이 없었다.
인기 하락의 원인은 국민의 실생활과 관련된 문제들에 있어서 그의 「등한」 내지는 「한계」를 보여준 데에 있다. 높은 실업율은 곧 사회 불안의 원인이 되었으며, 「인플레이션」의 상승은 국민의 일상 생활에 괴로움을 주었다. 게다가 「에너지」 위기까지 겹쳐 그는 실로 일대 파국을 짊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작년 봄, 그의 「동방 정책」이 벽에 부닥칠 뻔했던 것은 그런 내정적 곤경의 한 단면이기도 했다.
외신은 이런 상황 말고도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문제의 간첩 「길라우메」는 「브란트」의 사생활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그는 단호히 부인했으나 이런 것들로 직접적인 사임 동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브란트」의 생애를 일별하면 입지전적 인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사생아의 신분으로 생애의 태반을 망명 생활 속에서 보냈다. 오늘의 「성취」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취에 집착하지 않은 것이다. 스스로 물러날 때를 스스로 판단한 결단력은 평가를 받을만하다고 생각된다. 자신의 전 생애를 보상하는 사퇴는 그에겐 더없이 뼈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브란트는 단호히 사퇴하고 말았다. 이와 때를 같이해서 외신은 대서양 건너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난처한 처지가 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또 다른 외신을 보면 「길라우메」에 관한 정보는 미·영·불의 정보 기관서 귀띔 해 주었다고도 한다.
회전목마와 같은 정치의 세계는 한편으로 많은 교훈을 시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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