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시초프 회고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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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가장 적나라하게 자기를 들춰 보인 책으로는 「루소」의 『참회록』이 으뜸으로 꼽힌다.
그는 식모에게 좀도둑의 죄를 뒤집어 씌운 적이 있다. 그런 다음에 느낀 양심의 가책을 표현한 대목은 지극히 감동적이다.
그는 또 자기 친우의 애인을 가로챈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 대하여는 별다른 설명 없이 살짝 넘어간다.
양심의 가책을 별로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나 보다. 「루소」답지 않은 일이다. 그 당시의 풍속으로는 별로 죄스러운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기에 숨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함 수 있는 일기 속에서라고 내심의 치부를 완전히 털어놓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발의를 예상하고 쓴 회고록들을 사가들이 가려 읽는 까닭도 이런데 있다. 더우기 사람의 기억에는 으례 착오도 있을 수 있다. 2차 대전때, 똑같은 「유럽」전선을 겪은 「아이젠하워」와 영국의 「몽고메리」의 회상록이 엇갈리는 까닭도 이런데 있다.
최근에 또다시 「흐루시초프」가 남긴 회고록이 발표되었다. 그 전적에 대해서는 과연「흐루시초프」자신의 글이었느냐는데 대한 의문이 많았다.
이번 것도 마찬가지다. 그가 밝힌 형질이 얼마나 정확한지에 관한 의문은 더욱 짙다.
그 자신도 자기의 얘기는 소련의 「정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못박고 있다. 그만큼 이색적인 글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나의 회고록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세대가 될 것이』라는 말은 매우 흥미 있다. 전편 때와 마찬가지로 「정사」와는 전혀 견해가 다르다는 남편이 어떻게 발표될 수 있겠느냐는 것도 의심스럽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적 지식인에 대한 보다 많은 관용을 베풀고 그들을 위한 활동 기회를 확대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그는 회고록에서 거듭 밝힌 모양이다. 이것은 「파스테르나크」에 대한 탄압정책을 비판한 말이다. 아직은 전문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소련의 현 체제에 대한 비판은 이밖에도 여러 곳에서 나타나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연금된 속에서도 「솔제니친」이 반체제의 글을 쓰고 그것을 또 외국에 발표할 수 있었으며, 그를 두둔한 「사하로프」가 아직은 국내에서 건재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소련이다. 「흐루시초프의 회현록 정도는 충분히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스탈린」의 죽음 이후 소련국민은 처음으로 욕구와 불만을 표현하기 위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사회를 부여받았다』이렇게 「흐루시초프」도 밝혔다.
혹은 「흐루시초프」의 시대보다 지금이 더 자유로와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얘기일 뿐이다.
다만 소련이 적어도 밖으로나마 관용을 보일 만큼의 여유가 생겼는지, 아니면 그만큼 성숙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소련도 많이 바뀌어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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