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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감정'과 개인의 안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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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 교수

어린 시절 다정했던 한 친구와 정치문제로 티격태격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같은 인간으로서 우리는 분노·미움·시기·기쁨·배려·연민·사랑 등등의 많은 감정을 공유하지만, 구체적 현실에 대한 정서적 반응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당연하지 않은가. 누구나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연령·지역·학벌·연봉·종교·신체, 집안 내력, 유년기 체험 및 미적 취향까지 개개인의 정서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원인은 복잡다단하다. 서로 다른 체험의 세계를 갖기에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살 수밖에는 없다. 한 영화 주인공의 독백처럼 현대인은 저마다 고독한 섬이 아니던가.

 그런 개개인의 차이를 잘 알기에 조금이라도 생각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동류의식을 느낀다. 바로 그런 동류의식에서 정치적 연대가 발생한다. 다양한 정치조직과 결사체의 밑바탕엔 그런 정서적 유대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사회에서 동류의 결속은 생각이 다른 사람과 집단을 향한 거부와 공격으로 빈번히 이어지곤 한다. 공동의 적을 향한 증오심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한 편으로 꽁꽁 묶어 똘똘 뭉치게 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대로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면, 현대철학자 누스바움의 통찰대로 정치는 감정과 직결된다. 정치를 오직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이라 믿는다면, 인류사의 어둠을 외면한 나이브한 발상이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정서적 투쟁의 과정이다.

현실정치에서 ‘정치감정(political emotions)’은 린치·테러·반란·숙청·학살·침략·내전·혁명 등 대규모 갈등을 야기하는 근원적인 심적 동기이다. 그런 현실을 잘 아는 영악한 프로 정치인들은 틈만 나면 대중의 정서에 불을 질러 권력을 쟁취한다. 인류사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그런 파괴적 ‘정치감정’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정치적 구호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세계사를 돌아보면, 가장 위험한 ‘정치감정’은 단연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이다. 20세기 인종청소의 사례를 분석한 역사사회학자 마이클 만 교수는 ‘민주주의’를 내건 다양한 정권에서 특정 민족이나 계급이 ‘인민’ 혹은 ‘국민’의 이름을 사칭할 때 최악의 인종청소가 발생했다고 말한다. 나치의 게르만 순혈주의가 민족의 이름으로 600만의 유대인을 죽인 것이나 폴 포트 정권의 인민민주주의가 계급의 이름으로 킬링필드의 대학살을 저지른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 인류사 최악의 전체주의 정권인 북한의 김씨 왕조 역시 ‘민족’과 ‘계급’의 이름으로 반인륜적 정치범죄와 인권유린을 자행해 왔다.

 프로 정치가들은 대부분 그런 ‘정치감정’의 위력을 잘 알고 있다. 권력을 잡기 위해 그들은 때론 ‘민족’을, 때론 ‘계급’을 팔아 사분오열된 대중의 정치의식에 최면을 건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해 일본인의 ‘정치감정’에 불을 지르는 전술이다. 중국의 공산당 정부도 역시 정기적으로 반외세 감정을 부추겨 중국 인민들을 내적으로 결속한다. 우파독재와 좌파독재 모두 대중의 ‘정치감정’을 숯처럼 태워서 집단주의 광기로 활활 타오르게 한다.

 향기로운 삶을 살기 위해선 우리 모두 일단 개인의 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지자를 모으기 위해 입만 열면 민족·국민·계급·지방을 외치는 프로 정치인의 불쏘시개가 되어선 아니 되리라. 전국시대 이단의 철학자 양주(楊朱)는 말했다. 내 정강이의 털 하나를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그 털을 뽑지 않겠노라고. 일면 극단적 에고이즘으로 들리는 이 말 속에 어쩌면 행복한 삶의 비결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개인적 체험의 세계를 넓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때에만, 비로소 우리의 ‘정치감정’이 부드럽게 이타적 사랑으로, 공동체의 희망으로 자라날 것이므로.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 교수

◆약력 = 고려대 석사 및 학사. 하버드대학 박사. 중국철학 및 사상사 전공. 현 맥매스터대학 역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