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첫날, 칼 빼든 황창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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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규 KT 신임 회장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우면동 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회장으로 공식 선임됐다. 황 회장은 “임원 수를 대폭 줄이고, 잠들어 있는 KT의 1등 DNA를 되살리겠다”고 말했다. [뉴스1]

“KT를 1등으로 만들겠다.”

 27일 국내 최대 통신기업 KT의 수장이 된 황창규(61) 신임 회장의 일성이다. 이 목표를 위해 그는 취임 당일 칼을 빼들었다. 이석채 전 회장의 손발이 됐던 기존 임원들을 배제하고 새 인물로 새 판을 짰다. 임원 수도 이전(130명)보다 27% 적은 95명으로 줄였다. 2009년 이 전 회장의 취임 전 수준이다. “기업에서 인사를 연구개발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황 회장의 평소 소신대로 취임하자마자 대규모 임원 인사로 조직 장악에 나선 것이다.

 황 회장의 첫 인사의 키워드는 ‘황창규 사단’ 만들기다. 황 회장은 외부 인사도, 전임자 사람도 아닌 KT 옛 주류 그룹을 주목했다. 임헌문(54) 커스터머 부문장(부사장)과 한훈(56) 경영기획부문장(부사장)이 대표적이다. 둘 다 ‘올레KT’라고 불리는 이 전 회장 영입 인사들에게 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KT를 떠났던 ‘원래 KT’들이다.

 KTF 시절 마케팅 전략실장을 지낸 임헌문 부문장은 이전에 텔레콤&컨버전스(T&C) 부문 통신사업운용총괄을 지낸 현장 전문가다. 2012년 퇴사해 충남대 교수로 있다가 이번에 황 회장의 부름을 받았다. 한훈 전 KT네트웍스 대표도 남중수 전 사장 사람으로 분류돼 이석채 회장 시절 퇴직했다가 이번에 황 사단에 합류했다.

 KT 내부에서도 숨은 인재들이 발탁됐다. 부문 내에서 승진 이동한 신규식(57) 글로벌&엔터프라이즈 부문장(부사장)은 KT의 유선사업 경쟁사인 SK브로드밴드 부사장을 하다가 2011년 KT로 옮겼다. 그동안 국내 영업을 총괄했다. 앞으로는 “융합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황 회장을 보좌해 글로벌 사업의 밑그림을 짠다.

 남규택(53) 마케팅 부문장(부사장)도 KTF 출신으로 전략기획과 현장업무를 두루 경험한 인물이다. 이 전 회장 시절 요직을 거쳤지만 KTF에서 ‘쇼를 하라 쇼를’이라는 카피를 빅히트시켰던 능력을 황 회장에게서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한편 오성목(54) 네트워크부문장은 기존 부문장들 중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유일하게 자리를 지켰다. KT 관계자는 “광대역 LTE 경쟁이 치열한 만큼 ‘전쟁 중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황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첫 인사에서 외부 출신에 밀려 서러움을 겪었던 이들을 중용해 조직을 추스르는 효과도 거뒀다.

 반면 전임 회장 시절 잘나가던 임원들은 줄줄이 낙마했다. 이 전 회장의 경복고 후배이자 26일까지 회장 직무대행직을 수행하던 표현명 사장, 이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 김홍진 글로벌&엔터프라이즈 부문장과 김일영 코퍼레이트 센터장 등은 황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난 5년간 KT에 짙게 물든 이 전 회장의 흔적을 지우겠다는 뜻이다. 황 회장은 이날 “지난 40여 일간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KT의 상황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현재 회사가 맞은 위기에 대한 1차 책임은 경영진에 있다”고 기존 임원들을 직접 겨냥했다.

 ‘융합’과 ‘1등’을 강조한 황 회장의 경영 전략은 그룹 내 싱크탱크 역할을 맡게 될 ‘미래융합전략실’에서 구체화될 전망이다. 황 회장은 이날 직원들에게 “우리의 주력인 통신사업을 다시 일으켜 융합의 영역으로 발전시켜 1등 KT를 만들겠다. 1등 DNA를 일깨우자”고 했다. 52개 계열사를 거느린 KT의 미래는 융합에 있다고 본 것이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처럼 최고경영자의 의중을 사업으로 담아내는 전략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새 회장의 첫 인사를 지켜본 KT 내부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KT 임원은 “취임하는 날 거사를 치른 새 회장의 빠른 업무 스타일에 적응하려면 당분간 KT에서 ‘악’ 소리가 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수련·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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