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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해발 1,507m서 "거제수"로 베푸는 「지리산 약수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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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1회 맞은 민속 제전>
한국의 명산 지리산에 화사한 벗꽃 소식과 함께 「레저」 인파가 붐볐다.
벌써 11번째를 맞는 연례 행사인 「지리산 약수제」에 올해에는 예년에 볼 수 없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부러 22일까지 구례 화엄사에서 거행된 제11회 지리산 약수제가 이처럼 눈길을 끌게 된 것은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교통이 편리해진데다 올해 화엄사 주변의 벚꽃이 예년보다 열흘 가량 늦어 약수제가 열리는 곡우절에 때를 맞춘 탓.
화엄사의 벚꽃은 진산 벚꽃이 질 무렵에 만개하여 이 무렵이면 항상 많은 상춘객들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일반에게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약수제는 해마다 곡우절에 영약으로 이름난 거제수 나무 약수를 제단에 올리고 풍년을 기원하는 호남 고유의 민속의 제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채수 제철 4월 하순>
약수제 때 제단에 올리는 약수는 지상에서 샘솟는 천연수가 아니고 거제수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
나무껍질을 약간 벗겨 흠집을 내고 그 틈새에 나뭇잎이나 대나무를 끼워 놓으면 나무에서 수액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데 이것을 받아 모았다가 마시는 것.
이 약수는 예로부터 신경통과 관절염·속병·요통 및 부인들의 대하증에 특효가 있다하여 많은 아녀자들이 마신다.
나무에 한창 물이 오르는 봄철, 양력으로는 4월 하순께가 이 약수 채집에 제철이며 고작해야 보름 정도. 이때가 약수로서의 효력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약수 빛깔은 처음 받았을 때는 천연수와 같으나 하루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엷은 「베이지」 빛으로 변한다. 약수의 효과도 채수 시간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제수 나무가 화엄사에서 16km나 떨어진 해발 1507m의 노고단 뒤쪽에 분포해 있어 부인네들이 채수 현장에서 먹기는 힘들고 전문으로 채수 해 오는 약수 상인들이 받아 온 것을 사 마시고 있다.
맛은 달콤하며 끈적끈적한 입맛을 느끼게 하고 하루 묵은 것은 감미의 농도가 짙다. 수박의 물맛을 연상하면 된다. 천연수를 섞어 먹으면 실사를 일으켜 비오는 날은 채수를 할 수가 없다.

<16ℓ한 통에 3천원>
또 상인들이 천연수를 섞어 마는 것을 막기 위해 검사원이 파견되어 채수된 것을 일일이 감정하기도 한다. 구례 관광 협회와 요식업 조합에서 파견된 검사원들이 상오 8시쯤 약수 상인들이 노고단에서 받아 오는 약수를 일일이 맛을 보아서 검사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이를 검사하고 있다.
전문적인 약수 상인들은 밤 12시쯤 나무마다 깡통을 매달아 수액이 모아지기를 기다렸다가 새벽 5∼6시께면 16ℓ짜리 물통 2개 정도 받아서 등에 지고 3시간 이상 걸리는 산길을 내려와 상오 9시께부터 화엄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다. 16ℓ 한통에 2천원에서 3천 원까지. 막걸리 잔으로 한 사발에는 30원씩.
이곳에서 15년 동안 약수 장수를 해 왔다는 백정수씨 (36·구례군 마산면 황전리)는 약수 제때는 60여명의 상인들이 몰린다면서 비만 오지 않으면 하루 2통을 팔아 5∼6천원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약수 장수 60명 붐벼>
거자수 (거제수) 외에 골리수 (고로쇠 나무) 수액도 비슷한 성분의 약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골리수는 우수 경칩을 전후했을 때 채수 한다.
따라서 지리산 약수는 우수·경칩 때 골리수 약수·곡우 때 거자수 약수로 알려져 있다.
다만 올해 약수제 때는 하루 5만여명씩 인파가 붐벼 화엄사 주변의 관광 질서가 엉망인 것이 양식 있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여관마다 초만원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밤새워 떠도는 장구 소리와 노랫소리는 피로해진 여행객들의 밤잠을 못 이루게 했을 정도.
한꺼번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릴 때 관광지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저마다 자숙할 줄 아는 몸가짐과 당국의 보다 철저한 단속이 아쉬웠던 올해의 약수 제 풍경이었다.

<고산에만 야생한 자작나무 이뇨와 골절·신경통에 특효>거자수란
이희승 편 한글 사전에는 『거자나무=자작나무』로 되어 있고 거자수 (수)는 『곡우 때 자작나무를 꺾어서 받은 부유스름하고 달콤한 물로 민간에서는 이뇨와 골절의 약으로 씀』이라고 설명돼 있다.
또 식물도감에 따르면 거제수 나무 (무제작이, 물 자작나무)는 학명이 Betula costata로 잎은 장란형이며 밑은 일자 모양이고 끝은 점차로 뾰족해 졌으며 엽맥은 가지런하다. 5월에 꽃이 피고 열매는 작은 견과로 난형이며 열매 이삭은 난형 또는 장원주 형이며 10월에 익는다.
표고 6백∼2천1백m 산 중턱에 야생하고 경남북·강원·평남북에 분포하며 만주「아무르」에 이르고 있다.
목재는 건축·도구·권련물 부리 등으로 사용하고 수액은 약용이라고 되어 있다.
글 이량 기자
사진 김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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