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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축구 끝냈다 김신욱의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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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2009년 K리그 울산 현대에 입단할 때 김신욱의 포지션은 수비수였다. 이젠 대표팀의 중요한 공격수가 됐다. 김신욱은 26일 미국 LA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트렸다. [LA=뉴시스]

김신욱(26·울산)은 한때 축구대표팀의 ‘미운 오리새끼’였다. ‘뻥축구’의 몸통으로 지목됐고 한동안 대표팀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포기하는 대신 노력했다. 월드컵이 열리는 2014년 국가대표팀의 첫 경기, 한국의 결승골이 그의 발끝에서 터진 건 우연이 아니었다.

 한국(FIFA랭킹 53위)이 26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콜리시엄 경기장에서 열린 코스타리카(32위)와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승리했다. 전반 9분 고요한(26·서울)이 패스한 볼을 김신욱이 오른발로 골망을 흔들었다. 지난해 11월 19일 러시아전에 이어 A매치 연속골이다.

 1m97㎝의 장신답게 제공권도 위협적이었다. 전반 35분 김신욱은 빈 공간으로 파고들던 김민우(24·사간도스)에게 헤딩으로 볼을 패스했고, 정확히 받은 김민우가 벼락같은 오른발 슛을 때렸다. 코너킥 때는 김신욱에게 2명 이상의 수비수가 달라붙었고, 덕분에 동료들이 찬스를 얻었다.

  홍명보 감독은 경기 후 “대표팀 원톱은 아직 해답이 나올 시기가 아니다. 그 위치에 있는 선수는 더 노력해야 한다”고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김신욱이 브라질에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점점 나아졌고, 오늘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 칭찬했다. 이날 골로 김신욱이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 오를 가능성이 커진 것은 분명하다.

 김신욱은 최강희 전 감독 때부터 대표팀의 중요한 공격 옵션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홍 감독 부임 이후에는 지난해 7월 열린 동아시안컵 이후 3개월 동안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김신욱만 들어오면 팀 전체가 그의 머리만을 겨냥하는 ‘뻥축구’를 한다는 게 외면받은 이유였다. 홍 감독은 많이 뛰는 축구를 좋아한다. 특히 공격수는 박주영(29·아스널), 지동원(23·아우크스부르크)처럼 스위칭(선수 간 위치 교환)에 능해야 한다. 버림받은 김신욱은 투정 부리는 대신 박주영의 경기 영상을 보며 스타일을 바꿨다. 강점인 포스트 플레이는 살리면서도 동료를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번 브라질·미국 전지훈련을 앞두고도 독하게 준비했다. 김신욱은 지난해 K리그가 끝난 후 유연성 강화 프로그램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안쪽으로 90도 정도밖에 꺾이지 않던 발목이 지금은 110도까지 돌아간다. 혹독한 다이어트도 했다. 아침에는 사과·바나나 등 과일과 요구르트 반 컵에 계란 흰자만 먹고, 저녁은 닭가슴살 샐러드와 잡곡밥 반 공기로 끝냈다. 그 결과 근육량은 1.5㎏ 늘었는데, 체중은 1~2㎏ 줄었다. 대표팀 피지컬을 담당하고 있는 이케다 세이고(54) 코치는 “김신욱이 가장 숙제를 잘해 온 선수”라고 했다. 이케다 코치는 선수들에게 트레이닝 일지를 쓰라고 숙제를 내줬는데 김신욱은 가장 두툼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대표팀은 멕시코(30일), 미국(2월 2일)과 차례로 격돌한다. 원톱 자리엔 김신욱이 계속 기용될 전망이다. 홍 감독은 “김신욱이 후반 25분 이후 체력이 떨어진 게 보였다. 그 이후에도 계속 쓴 건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는지 시험한 것”이라고 했다. 잠재력이 큰 김신욱에 대해 이것저것 점검할 게 많다는 뜻으로 읽힌다. 경기 최우수 선수에 뽑힌 김신욱은 “감독님이 분명한 지시를 내려 그대로 그 역할만 하려고 했고, 골도 넣을 수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골을 넣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LA=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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