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제3장 동북지방의 한적문화 탐방|제13화 신석항에 서린 은수천년(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우라니홍(이일본) 제1의 항구 니이가따(신석)의 이름은 우리에게도 꽤 잘 알려져 있다. 재일교포를 북한으로 실어보내는 이른바 북송선이 출입하는 항구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대륙으로 통하는 뒷문>
신석항은 해운뿐만 아니라 내륙교통면에서도 가히 일본의 중심부나 다름없다. 동경·추전·대판·명고옥 등지로부터 철도와 버스, 국내항공편 등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있을 뿐 아니라 거리상으로도 이들 요지로부터 3백㎞내외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항구의 특색은 역시 항구도시만이 갖는 이국적인 정서에 있다. 아득한 옛날부터 이 고장이 혹은『대륙으로 통하는「우라겡깡」(이현관=뒷문)』으로, 또 혹은 중대한 국사범들을 귀양보내는 『유형지 「사또가시마」(좌도도)로 통하는 단장의 항구』로서 수많은 사연을 남기고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 항구가 우리들에게 특히 유명한 곳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이른바 재일교포의 북송문제가 대두하고 나서부터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일본에 정착하여 꽤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교포들을 골라, 갖은 감언이설과 협박수단을 써서 생지옥 북한으로 끌어가는 이른바 북송선이 이 항구를 떠날 때마다 우리측 민단계와 저들 조총련계의 인파들이 몰려 때론 유혈충돌사고까지 벌이곤 했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북송선이 떠난다는 신석 중앙부두의 현장에 먼저 차를 몰았다.

<부두엔 소화물선 2척>
부두에는 북쪽으로 통하는 항구답게 소련 선적의 1만t급 화물선 2척이 닻을 내리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겐 기이한 느낌을 준다.
부둣가에 있는 수상서 경찰관파출소엘 찾아갔다. 현장에 부임한지 4개월째 된다는 파출소장 제등광웅경부의 말을 들으면 요새는 조용하지만 북송선의 출발을 저지시키려는 민단계와 이에 맞선 조총련계의 군중들이 각기 열띤 연좌데모를 벌였을 땐 자신도 한번 납치를 당해 혼구멍이 났다고 털어놓았다.
그에 의하면 처음 북송선이 떠나던 당시에는 이를 환송하려는 조련계교포와 일본 혁신단체조직원들, 그리고 이에 맞서 그것을 결사적으로 저지하려는 민단계교포 등 약 1만명이 일본 전국에서 몰려들어 험악한 분위기를 이루었으나, 요즘에 이르러서는 데모군중의 수효자체가 약 2천명정도로 대폭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 항구에서 떠나는 대형선박의 대부분이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북한의 청진·원산 등 공산세계라는 사실 때문에만도 이 곳 신석시민(인구 약40만명)의 상당부분이 혁신계를 지지한다는 것도 현장에서 처음 알았다.
그런데도 이곳 재일교포 약 3천명 중 민단계는 약3백50호 2천7백여명으로, 조총련계 1백60호 1천3백명에 비해 훨씬 강력한 조직을 가졌다한다. 현 다나까(전중) 일본수상의 출신지가 바로 이곳인데다가 신석현 출신 자민당 국회의원 32명이 참여한 신석 일·한 친선회의 지원이 이들 민단계 교포들의 지위향상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현지 민단 2천7백명>
그렇지만, 이곳 시민들 가운데 막상 한국에 관한 관심이 어느만큼이나 되느냐하는 것은 큰 의문이다. 기자는 수상서 파출소장과 얘기를 나누면서 우연히 그 벽에 걸린 흑판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게된 것이다.
벽에 걸린 흑판은 『5월중 외항선 입항 예정표』. 일시·선박명·항선지·적재화물명·선적국명 등 난에 백목으로 기재사항을 적어 넣은 것이었는데 거기 부산항으로 향하는 부산호·제3신한호 등 두 한국선박의 국적이 놀랍게도 하나는 조선, 하나는 한국으로 기록돼있는 것이 아닌가. 재일교포의 북송저지운동이 간헐적으로 벌어지곤 하는 본고장 이 신석시의 경찰관들 가운데서조차 이같은 혼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일본인들의 한국문제에 관한 관심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마침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고 있는 또 한척의 소련선박을 보면서 야릇한 감상을 털어버릴 수 없던 기자는 자꾸 미안해하는 재등경부에게 왜 이런 착각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