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와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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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템즈강에 첨탑을 비추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지역은 영국의 상징이다. 세계각국의 여행자들은 그 탑 위에 있는 「빅·벤」의 시보소리를 들어야만 런던에 온 것을 실감한다. 그것은 BBC로 방송되기도 한다.
바로 이 빅·벤은 영국 국회의사당의 심벌이다. 웨스트민스터 시엔 의사당이 있다. 하원에서 토론이 계속되는 동안엔 그 빅·벤에 불(등화)이 켜져 있다.
지금 여의도에 새로 짓고 있는 우리 국회의사당엔 해태의 조각상을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 의회의 심볼은 해태상이 될 모양이다.
해태는 짐승의 이름이다. 그러나 동물도감엔 없는 짐승이다. 상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자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이마에 달린 외뿔(단각)이 인상적이다.
해태는 동양의 전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로는 유니콘(Unicorn)이라고 한다. 이 짐승은 구약성경에도 등장한다. 들소로 번역되어 있다. 그 모양을 최초로 묘사한 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이다. 기원전400년에 그린 삽화가 남아 있다.
크기는 말만 하고 몸뚱이는 희며 머리는 주홍빛이고, 눈은 푸르다. 그리고 이마엔 외뿔이 달려있는데, 끝은 붉은빛, 가운데는 검은빛, 그 밑뿌리는 흰빛으로 되어있다. 서양에선 이 뿔에 술을 부어 마시면 제독이 되고, 위에 좋다는 속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유니콘은 처녀를 바쳐야만 잡을 수 있었다. 또 그리스도는 이 짐승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유니콘의 뿔은 인류를 구원하는 무기이며, 그는 성모마리아의 태중에서 산다는 것이다.
동양에선 중국의 『이물지』라는 고서에 그것이 소개되어있다. 「해치」(해치)라고도 부른다. 소(우)와 비슷하나 외뿔이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이 짐승은 선과 악을 판단할 능력을 갖고있어서 시비를 가려준다고 한다. 따라서 사악을 분별하고, 부정을 저주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선 옛날부터 이런 전설에 따라 법관의 관명을 『해치관』이라고 했다. 사람의 곡직을 알고 악인을 가려내는 능력을 해태에 비유한 것이다.
입법부인 국회가『해태상』을 그 상징으로 삼는 것은 그럴듯도 하다. 옳은 법을 제정하는 기능과 비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평로에 있는 지금의 국회는 만화가들에 의해 곧잘 길게 누워 잠자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노변을 따라 누운 듯한 건물은 마치 잠자는 모습과도 같다. 국회가 일을 하면 그런 만화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새 의사당이 서면 『잠자는 해태』가 될지도 모르겠다. 국회가 하는 일이 없으면 그 좋은 상징의 동물도 할 일이 없어진다. 『잠자는 해태』상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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