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 대통령 최후의 각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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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개월만 지나면 좋아질 것 같소. 대통령의 건강이 이러니 저러니 말을 하고있는 모양인데, 그렇다고 대통령 직무를 아무렇게나 수행하고 싶지는 않소.』
죽음을 5일 앞둔 3월27일 열린 정례 각의에서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은 애써 원기 있는 목소리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평소와는 달리 회의장 테이블에 둘러선 각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는 단지 미소지으며 『여러분은 내가 악수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것입니다』며 양손으로 제스처를 지어 보였다.
3월27일의 마지막 각의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73년5월30일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로 향발하던 날의 그것처럼 최악의 상태였었다.
그의 목소리는 무거웠고 얼굴은 축 늘어져 있었으며 당황한 각료들은 그를 힐끔힐끔 쳐다볼 뿐 영문을 몰랐다.
회의장 분위기는 숨소리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숙연해 있었다.
각의가 시작될 때부터 각료들은 퐁피두 대통령이 극도로 피곤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또한 그의 코트 자락에 묻은 탈지면을 보고 그가 방금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각의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이날 각의의 마지막 의제는 영국 노동당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열린 구공시(EEC) 농상회담과 영국의 EEC 가입조건 재협상 문제였다.
그는 이때 평소처럼 명확하고 단호한 어조로 각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끈기를 갖되 항상 영국인이나 미국인에게 속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우리는 침착하고 확고하게 행동해야할 것입니다. 이는 반미적으로 돼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단지 미국인들에게 우리가 예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부드럽게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마지막 발언에 나선 위베르·제르멩 의회담당 국무상이 차기회기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늘어놓자 퐁피두 대통령은 의회와 타협하지 말고 당당한 자세를 취하도록 당부하기도 했다.
각의가 끝났을 때 퐁피두 대통령은 고통에 휩싸여 의자에 묻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치 정신적으론 아무렇지도 않으나 육체적으론 파탄에 이른 사람과도 같이 보였다. 퐁피두 대통령은 각료들을 향해 몸을 일으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몹시 기분이 나쁘오. 즐거운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소. 그러나 모든 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요. 쉬고싶소. 카자르크(그의 시골집 중의 하나)에 갈까하오. 그러면 모든 게 좀 나아질 거요.』 그의 어조는 용기 있었으나 피로에 차있었고 낙관적이었으나 슬픔을 띠고 있었다.
각료들은 모두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는 애써 이야기하느라 피로에 지쳤고 심히 땀을 흘렸다.
그의 기력은 다해 있었지만 그의 의지와 용기는 각료들을 압도했다.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엘리제궁은 구조가 불편하므로 파리에 있는 사저인 케·드·베튄으로 가겠다고도 했다.
『거기 가면 아들을 가까이 할수 있소. 집무도 더 잘될 거요. 엘리제궁보다는 훨씬 조건이 좋지.』그리고 나선 퐁피두 대통령은 프랑스 언론에 화살을 겨누었다.
『나는 이제 신문을 읽지 않소.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오. 여러분은 매스컴이 없이도 모든 것을 알 수 있소. 한 주간지에서 내가 소련인들에게 감기 들지 않을 곳으로 나를 초청해달라고 애걸했다는 기사를 보았소. 기자들은 허튼 소리를 쓰기 전에 스스로 정확한 내용을 알아야할 것이오.』
퐁피두 대통령은 평소 각의가 끝나면 장·필립·르카 공보상과 함께 각의 성명을 보기 위해 옆 살롱으로 가곤 했다.
그러나 이날은 이같은 일정을 취소, 테이블에 앉은 채 메스메르 수상이 갖다주는 성명전문을 받아 읽었다.
그러는 동안 다른 각료들은 그에게 작별인사도 없이 회의장을 떠났다. 이것이 대부분의 각료들이 고인을 본 마지막 기회였다. 【AFP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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