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도박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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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낙네들의 도박행위가 또 세인의 입담에 오르내리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흔히 TV「드라마」에서 청승맞은 과수들이나 화투장을 펴놓고 소일하는 광경을 본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얘기가 아니다.
대명천지에 어느「아파트」에서 몇 백 만원의 판돈을 놓고 부녀자들이 도박만을 벌여 놓고 있었다. 행여, 그 충혈된 눈동자들을 마주 볼까 두렵다.
우스개 소리에 이런 얘기가 있다. 어느 유치원에서 보모가 아이들에게 숫자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이때 한 어린이는『일·이·삼…십·「재크」·「퀸」·「킹」』하고 외더라는 것이다. 그 가정의 분위기를 가히 알만 하다.
필경 도박 잘하는 아낙네의 아이들은 학교에서「삥」「사꾸라」「난초」「장땡」운운할지도 모르겠다. 우습기는 커녕, 모골이 옹송그려 진다.
도박은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큰 죄의식을 자아내지 않는 놀이처럼 되었다. 공인된 것으로는 무슨 복권이 매주 TV에서 공개 추첨되는 일도 있다. 언젠가 한 주간지에 청년의 낙서투고가 실려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나의 희망과 절망-그것은 금요일 오후6시』-. 복권추첨이 중계되는 시간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낙서라고는 하지만, 실로 값싸고 보잘 것 없는『희망과 절망』이다.
아낙네들의 도박행위는 다분히 이 사회의 터무니없는 소비풍조에도 상당한 동기가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분수에 맞는 가계를 꾸려 가는 착실하고 다소곳한 부녀자라면 도박 따위는 눈여겨보지도 않을 것이다. 도박의 심리는 마치 무도회에 남의 진주목걸이를 빌어서 걸치고 나가는「허욕」이나 다름없다.
한편 실력주의(매리트크라시)에 대한 무의식적인 경멸심도 없지 않다. 동전 한 닢을 벌기 위해 얼마나 애틋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가를 그들은 불신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실로 미덥지도 않은 방법으로 하룻밤사이에 거액의 돈을 번다.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흐느적거릴수록 벼락부자들이 활개를 친다. 관가나 상가를 가릴 것 없이, 이런 풍조는 좀체로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물질이나 돈의 진가를 미와 땀의 결정체로 보기보다는 요령과 기회의 산물로 생각하기 쉽다. 따라서 도박심리 따위가 발동하는 것이다.
이런 가정은 전통적인 의미의 윤리관을 갖고 있지 못하다. 가계나 자녀교육은 가정부나 가정교사에게 맡기고 주부는 유한한 시간을 누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들은 돈 따위에서 따뜻한 사랑이나 맥박 따위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대로 자신의 허식과 맹목적을 위해 낭비될 것이다. 아낙네들의 도박행위는 이처럼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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