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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환경 개선을 위한 「시리즈」(4)-즐비한 환경공해 속|불안정한 심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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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고 정서적 욕구가 왕성한 나이에 입시에 실패, 좌절의 쓴잔을 마신 재수생들의 심리상태는 대체로 불안정하다. 또한 재학 때의 물리적 구속에서 해방돼 자유가 주어진 반면 특정한 소속감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자율에 맡겨진 수험생산의 권태와 누적된 욕구불만·좌절감, 그리고 열외자(열외자)의 고독감 등은 자칫 자포자기적인 탈선으로 발전, 극장·다방·「고고·클럽」·음악감상실 등 유흥가를 드나들며 폭행·절도 등 사회악을 저지르는 일까지 가끔 있다.
작년 S대 입시에 실패하고 1년 재수 끝에 올해Y대 정외과에 응시했으나 다시 낙방, 2년째 재수생활을 하게된 김모군(20·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경우에서 이러한 재수생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김군은 아버지가 건축업을 하는 중류가정의 차남. 형은 또 일류대에 다니고 올봄 고3이 되는 동생도 공부를 잘해 우등생이다. 내년엔 동생과 같이 대학시험을 보게 된다.
입시에 낙방하자 김군은 가족·친지들 보기가 부끄러웠고 진학한 친구들보기도 창피했다. 집에 있기가 싫고 공부도 안돼 서울 종로에 있는 K학관 종합반에 등록을 했다. 그러나 학관에서의 공부는 강제성이 없어 강의를 듣고 안듣고는 본인의 자유. 공부에 흥미를 못느낀 김군은 1주에 3일정도만 학관에 나가고 대부분의 시간은 학관에서 사귄 재수생 친구들과 어울렸다.
집에선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아들이 학관·도서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줄 알지만 사실은 그게 아닌 것.
번화가에 위치한 학관주변엔 다방·당구장·술집·극장들이 즐비하다. 오전엔 우선 다방에 가서 차 한잔 마시며 친구들과 잡담을 나눈다. 어른스럽게 담배를 피워 물고 뽀얀 자연을 뿜어본다. 다시 당구장에 몰려가 흰 공·붉은 공이 부딪치는 소리에 취해 시간을 잊는다. 김군의 당구실력은 2백점. 그동안의 당구장 출입빈도를 응변해 준다.
허기가 지면 점심 먹고 나와 다시 음악감상실에 가 3∼4시간을 보낸다.
명동의 D음악감상실은 김군 또래의 더벅머리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하는 곳. 컴컴한 조명아래 신나게 울리는 음악에 이들은 열광한다.
「뮤직·홀」에서 사귄 여학생들과 「그룹」이 되어 김군은 매주 일요일이면 서울근교로 등산을 간다. 작년 여름엔 이들과 대천해수욕장에 1주일간 피서까지 갔다 왔다. 그 비용을 대기 위해 김군은 집에 있던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나가 팔았다.
가끔 울적한 기분을 풀기 위해 대폿집·맥주「홀」에도 간다. 한번은 모 대학신입생 패거리들이 우쭐대는 것이 꼴보기 싫어 일부러 시비를 걸어 대판싸움을 벌인 일도 있다.
자신을 가늠치 못하고 유흥가를 떠돌다 찬바람이 나기 시작한 지난11월 하순께부터 마음을 잡고 공부에 열을 올렸으나 이미 때는 늦어 다시 낙방하고 이제는 거의 자포자기상태. 『아무대학이나 들어가 간판이나 따든지 아니면 군대를 나가겠다』는 것이 김군의 말.
역시 작년에 서울 H여고를 졸업한 박모양(19)도 명목상의 재수생. 광화문 S학관에 수강신청을 했으나 출석은 월8일정도. 나온지 며칠 안돼 뒷자리에 있던 남자 재수생 L모군(20)과 눈이 맞아 「데이트」에 여념이 없다. 열렬한 「고고」춤「팬」인 박양은 「클럽」에 가서 밤새 춤추며 몸을 흔들고 나면 심신이 후련해진다면서 『살맛이 나는 것은 이때뿐』이라고 말한다.
대구출신의 최모군(20)도 마찬가지. 작년 9월에 상경, 서울마포의 이모 집에 기식하면서 인근 도서실에서 공부했으나 금년엔 예비고사에 마저 불합격하고 말았다. 부모슬하를 벗어나 있는 최군은 이제 『될대로 되라』식.
고향에 내려갈 면목도 없고 마음도 내키지 않아 그대로 서울서 전전, 친구들과 어울려 극장·당구장·음악감상실 등에서 하루종일 소일하고 저녁마다 술을 먹는다.
다달이 월3만원씩 고향에서 학원등록금·책값 등으로 보내오던 돈까지 끊겨, 용돈이 떨어지자 최군은 강도 짓까지 하게 됐다. 지난2월초 친구2명과 술을 마시고 난 뒤 서울동대문구창신동 뒷골목에서 길 가던 모 고교 1년생 김모군(16)등 2명을 깨진 소주병으로 위협, 차고 있던 팔목시계 2개를 빼앗아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혔다.
김군·박양·최군의 경우가 일반적 현상일 수는 없다. 학관에서, 도서실에서 다방한번 안가고 열심히 밤새워 공부하는 재수생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소속감이 결여되고 심리적·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만큼 재수생의 장래를 위해서는 가정 및 사회의 따뜻한 지도가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현실이다. <지원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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