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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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금 투기가 격렬하게 진전되어 26일의 「파리」 금시장에서는 「온스」 당 1백 88 「달러」를 기록했다. 이 값은 연초보다 「온스」당 70「달러」가 오른 것이므로 금 투기는 가위 그 절정에 오르고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며 금시장 관계 전문가들의 전망에 따르면 금값은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이 예상된다.
이처럼 금 투기가 격화되고 있는 직접적인 계기는 「오르틀리」 EC위원회 의장이 앞서 동경에서 EC가 곧 금의 공정가를 인상할 것이라고 비친데 뒤를 이어 EC 재상회의가 이를 검토키로 18일 합의한데 있다.
EC가 금의 공정가를 인상하고 역내에서나마 그것을 국제 결제수단으로 이용하게 할 수도 있다고 시사한 것은 국제통화질서의 개편이라는 큰 줄거리에서 보아 매우 중요한 뜻을 가지는 것이다. 즉 금 폐화를 중심으로 하는 IMF 개혁안이 결국 미국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기득권의 옹호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프랑스」의 주장이 EC 내에서 정식으로 검토의 대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데 문제의 깊은 뜻이 내재 되어 있다.
만일 EC가 금가를 현실화하여 국제결제수단으로 활용하게 된다면 선진국간 무역의 70%수준을 점하고 있는 EC 무역의 비중으로 보아 미국이 추진하는 IMF 개혁방향은 좌절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금폐화는 기대할 수 없음을 뜻한다.
물론, 석유파동으로 야기되는 EC의 국제수지 적자폭이 연간 2백억 달러 수준에 이르러 고 보상수단으로서 금가 현실화론이 EC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관측도 없지 않으나 EC가 그처럼 근시안적인 측면에서 금 문제를 다루려는 것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본질적으로 금 투기의 배경을 이루는 것은 현재의 「달러」체제 하에서는 미국의 통화당국에 국제경제질서를 맡기는 결과가 되므로 아무리 IMF체제를 개혁해도, 「달러」체제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서구제국의 신념 때문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금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달러」잔고가 1천 2백∼1천 4백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는 현재의 국제 유동성 사정으로 보나, 그 때문에 야기되는 본질적인 세계 「인플레」 및 자원투기로 보나, 화폐 특히 「달러」신용은 극도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며, 논리의 당연한 귀결로 실물자산, 특히 금으로의 전환을 위한 선호는 계속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인플레의 누적과 자원파동을 촉진시키는 과잉 「달러」를 효과적으로 막으려 한다면 개별국가의 이익이나 정치적 속박에서 벗어나, 국제수지 적자 국은 자동적으로 국내통화를 수축시킬 수 있는 장치를 다시 도입해야 하는 것이며, 그 최선의 방법이 금본위제라는「프랑스」의 입장이 EC의 태도변화로 이제 빛을 보기 시작하는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한편, 세계경제에 대한 주도권을 이른바 IMF체제를 통해 확보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IMF체제를 실질적으로 부인하려는 EC제국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공산은 적다. 2차대전후의 「브레튼우즈」 협정이 「케인즈」의 이상보다는 미국의 실리에 따라서 규정되었던 것처럼, 앞으로의 국제통화질서도 미국과 EC의 대결과 절충이라는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서 재구성될 것임은 거의 확실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 대결과 절충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수록 금 투기는 더욱 격화될 것이며 반사적으로 각국은 자국이익의 보호를 위한 보호주의 「블록」주의를 강화시켜 국제경제상의 파동요인을 축적시켜 나갈 것이다. 요컨대, 금 투기는 IMF체제의 붕괴과정을 상징적으로 시사하는 것이며, 동시에 새로운 통화질서의 형성과정에서 금의 역할이 배제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한다. 또 새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이 장기화하면 할수록 통화파동, 무역질서의 교란도는 커진다는 사실도 무역의존도가 이미 71%에 이른 우리로서는 깊이 주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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