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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관리층에 치우친 숙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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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리에 대한 지탄 감안>
○…한달 기간을 통해 단행한 공무원 숙정이 20일로써 일단락됐다. 숙정은 공무원의 경우 3명의 차관급도 포함되었지만 대체로 2, 3급의 중간층이 주 대상이 됐다.
그렇더라도 45만 공무원중 3백31명과 국영기업체 임직원 2백91명을 공직에서 밀어내 그 범위나 규모에 있어 대대적인 작업이었던 셈이다.
이번 숙정은 정부가 펴온 민심수습의 일환으로 풀이되고 있다.
정부는 작년 일련의 사태가 있은 뒤 12·3개각을 단행하고 대화행정·봉사행정을 구호로 내걸었다.
1·14경제긴급조치는 이런 행정의 방향과 관련, 서민생활보호에 역점을 둔 것이고 때를 같이해 시작된 공무원숙정도 민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공무원을 제거, 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처라는 것.
따라서 숙정은 독직등 공무집행과정의 어떤 사실보다는 평소의 생활이나 평판이 기준이 됐다.
그래서 공무원가운데서도 대민접촉이 많은 경제부처가 중심대상이 됐다는 얘기다.
총무처·법제처등이 단 한명의 대상자도 없는 반면 경제부처중에서도 국세청이 숙정된 공무원의 30%가 넘는 1백30명을 잘라낸 것이 이것을 입증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지탄을 받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정리하자니까 세리에 대한 대량 숙정이 뷸가피했다는 후문이다.

<형사책임추궁...주장도>
○…숙정의 기준이 민원이라는 다소 막연한 것이었고 부처별로 행해져 공무원 사이에선 선정의 기준과 부처간의 격차, 숙정범위를 놓고 논란이 많았고 평가도 엇갈린다.
정부의 수사기관이나 사정기관에서 조사한것도 아니고 장관들이 소관부처 형편에 미리내린 선정기준이 다분히 주관적이고 알아본 내용도 미흡했다는 것.
특히 부정·부패의 규모나 생활수준의 차는 부처에 따라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처리하기에는 문젯점이 많다는 것이다.
몇몇 부처는 항간에서 기대하던 것보다는 예상외로 숙정규모가 작고 부처간에 형평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평도 있다.
△내무부의 경우 경무관급 이상 5명의 숙정대상자중 4명이 축재나 부정과는 거리가 먼 여자관계로 물러났다는 것이고 9명의 총경중 서울시경 관내는 하나도 없다는데서 편파적이라는 평이 있고 △문교부는 숙정 이전에 터졌던 선인학원 관계자 4명만이 고위직이고 나머지는 교장·교사·산하단체 부장·부참사등이라는 것이며 △서울시도 42명의 국장급 가운데 숙청대상이된 6명중 3명이 일반직이 아닌 병원장이며 11명의 구청장중에는 하나도 없고△경제부처중에서도 각부 본부와 국세청과의 균형이 엄청나게 흔들렸다는것등….
물러난 일부 공무원들 가운데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면서도 자기보다 더한 동료의 잔류에는 납득이 안간다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숙정작업이 출발부터 명확한 선정기준이나 범위를 긋지 못하고 주관적 판단의 개입여지를 전제하고 있었던 점에 기인하고 있는 것 같다.
관료부패가 만연돼 이런 방식의 숙정이 불가피했다고는 하지만 권고사직형식의 정리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공무원들도 신분보장을 생명으로 하는 직업공무원제도가 정치바람이나 사회분위기등 외적요인에의해 흔들려서는 곤란하다면서 사회의 변혁기마다 만만한 공무원들에게만 쏠리는 화살을 우려했다.
『공무원이 부정을 저질렀다면 법절차에 따라 징계 또는 형사책임을 물어야지 죄질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권고사직으로 다룬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에 곁들여 행정부패는 정치부패의 제거가 선행돼야한다는 말을 하는 이도 있다.

<개각가능성 대두되고>
○…정치부패문제는 야당에서 제기됐다.
신민당은 숙정이 차관급이하의 직업공무원에 국한된 것에 이론을 제기, 국무위원을 포함해 정치권력을 이용한 치부에 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국무위원등 정치부패에 대한 숙정이 뒤따를지는 아직 뭐라고 단정할 수 없다.
각료급의 숙정이 뒤따를 것이냐에 대해 김종필총리는 『국무위원은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는 자리가 아니냐』고 말할 뿐 직접적인 대답은 피했다.
얼핏 숙정에선 제외된다는 뜻의 얘기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선 숙정대상자가 있다면 개각을 통해 정리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는 뜻도 담겨 있다. 이번 숙정의 결과에 대해선 장관들이 책임을 지게 돼있다는 얘기, 그리고 간간이 흘러나온 「어떤 조사설」등과 관련,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 일부 개각 가능성이 있으리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숙정은 이것으로 끝났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태도다.
숙정당한 공무원중 부정축재몫의 국고환수도 제기된 문제의 하나.
신민당은 숙정사유를 공개하고 재산환수도 하는것이 부정재발의 방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재무장관은 국회재무위에서 현행세법으로 다스리겠다고 말한 일은 있지만 숙정이 의원면직으로 처리됐기 때문에 그 이상의 책임추궁이나 재산환수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관졔자는 말했다.

<관료사회 풍토를 쇄신>
○…숙정평가등에 이론을 남기고는 있지만 이번 숙정이 관료사회의 풍토를 쇄신하는 한 계기는 된 느낌이다.
공무원 개개인의 몸가짐과 생활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숙정후속 인사가 뒤따랐지만 종래의 치열했던 승진운동이 자취를 감췄다.
외식이 줄고 경제부처의 고위관리들도 고급요정이나 골프장은 발을 끊겠다고 말하고 있으며 관리들이 주위를 의식하고 가족들의 생활태도에까지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등이 단적인 예다.
이점에서 부패·사치공무윈의 징벌보다는 부패·부정의 예방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3,4년을 주기로 이런 작업이 계속돼야 한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부정·부패가 공무원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에도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반부패에 대한 의연한 자세확립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병행해 공무원이 부정없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조성이 선결돼야 할 것이며 여기에는 공무원의 처우개선. 완벽한 신분보장, 공정한 인사관리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등이 지적되고 있다.<고학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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