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군도」7부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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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뉴요크13일UPI·AFP동양】「뉴요크·타임스」지는 13일 어제(12일)「모스크바」에서 체포된 반체제작가「알렉산드르·솔제니친」의『수용소군도』의 제7부 발췌부분을 제재했다.
「솔제니친」이 체포되기 전에 입수한 이 미 출판 제7부의 발췌 본은 56년부터 68년까지의 소련형무소 내막을 다루고 있다.
「솔제니친」은 이 발췌 본에서 소련지도자들이 그들 자신의 이익이나 국가의 이익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 정의의 요구를 용납치 않은 소련의 사법·행정제도를 신랄히 공격하고 있다.
소련에서는 피고가 정당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으며 그들의 유죄판결은 미리 결정되고 만다. 다음은「뉴요크·타임스」가 이날 발표한 이 저술을 발췌한 것이다.

<소련의 법이란 세계 어느 나라의 소위「법」과는 달리 아주 강압적이고 교묘하다. 「로마」사람들은 어리석게도『법에는 소급 법이 없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소련에서는 그렇지를 못하며 옛 속담에서도『법은 소급해서만 만들어질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와는 다르다.
하나의 새로운 멋있는 법령이 반포된 후 이미 옛날에 체포된 사람에 적용시키고 싶다면 소련에서는 왜 안되나? 물론 가능하다.
이러한 법의 소급적용사례는 투기업자 및 뇌물수령 자에게도 있었는데 소련각처에서 법령을 소급해서 적용시켜야 될 자들의 명단(심지어는 형량까지)을 적어「모스크바」에 보내면 그대로 시행된다.
소련의 사법체제 말고는 세계 어느 국가에서 이러한 현상이 가능하단 말인가. 어떤 사람이 25년형을 받아 70년대까지 옥살이를 해야하는 데 갑자기 새 형법(1961년)이 나타나 최고형이 l5년으로 된다면 법대 1학년학생도 25년은 취소가 된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에서는 취소되지 않는다. 너 자신이 혼자 넋두리같이 소리지를 뿐이며 벽에 머리를 박아 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25년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다.
이것이「흐루시초프」시대의 해빙기가 들어오기 전에 살던 인민들 즉 우리가 중계수용소에서 만나 같은 감방을 쓰며 죄수수용소에 갇혀있던 버림받은 우리 동포들의 숙명이었다.
새로운 우리 자신의 생존환경 속에서 우리는 그들을 망각한지 이미 오래되었으나 아직도 그들은 그곳에 남아서 여전히 철조망과 감시 탑을 넘어 숱하게 짓밟혀진 지구상의 똑같은 두개의 작은 구역둘레를 침울하고 공허하게 서성거리며 잊혀져있다.
신문에서는 지도자들의 초상이 바뀌고 당 강령으로 연설이 달라지고 그들은「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에 맞서 투쟁했다. 그 다음 투쟁을 중지했다.
그러나 끈질긴「스탈린」의 자손들은 여전히 소련내부에 살아있다.
실제로 정치범들의 수는 이제「스탈린」시대와 비교할 수는 없다. 정치범들은 현재 수백만 명이 안되고 수집만 명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바로 소련의 법이 새롭게 달라졌음을 뜻하는가? 아니면 항해의 진로가 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뿐인가? 소련의 법에는 위증죄라는 것이 전혀 없다. 아니 위증을 죄라고 조차 생각하고 있지 않다. 거짓증언을 하고서도 활개를 치며 잘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점잖게 늙어가 황혼기에도 영광을 누리고있는 것이다.
위선자를 받들어 모시는 국가는 역사상 그리고 세계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소련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소련의 법은 살인자-살인검사를 처벌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들 살인검사들은 영광스럽게 봉직하고 있으며 오래오래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은 여전히 우리의 법은 동요하고 있고 몹시 떨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법이란 공포 적으로 독창적인 절차가 특징적이다.
고위에 있는 판사들이나 검사들은 경험이 많은 자들이다. 따라서 이 자들은 이런 광풍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리의 법의 배는 그런 식으로 기울어져있기 일쑤다.
그리고 내일이면 사고의 잘못으로 수백만 인민들이 감옥으로의 수감명령을 받게되거나 반동적인 시민들을 국외로 출국시키며 교수형을 처하는 등 사태가 일어나도 강력한 배의 선체는 동요됨이 없이 항해를 계속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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