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림 비공」캠페인 확대의 저변|중공의 새「반 조류」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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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작년 8월 십전 대회직후부터 일기시작한 중공의 공자비판운동은 금년 2월에 접어들면서 한층 확대되어 이제 제2의 문화대혁명으로까지 평가되고 있다. 중공당 기관지「인민일보」는 지난 2일자 사설에서 지난 6개월 동안의 공자비판운동을「비림비공」(임 표·공자일괄비판)으로 통일시켜 문 혁의 성과를 보다 높은 단계로 이끌어 갈 것을 촉구했다.

<임 표를 현대의 공자로>
신화사 통신온 지난 1월말부터「추이신」조선소노동자들은 임표와 공자를 비판하는 1천4백50개의 논문을 썼으며 1백20회의 회의를 개최, 1천2백명이 연설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억측이 구구했던「현대의 공자」는 임표 임이 판명되고 공자비판은 곧『임표 노선의 극우적 본질을 폭로하는 사상적 무기』(인민일보)로 정의되었다.
「인민일보」는「비림비공」운동이『착취계급의 낡은「이데올로기」, 문화·습관에 대한 인민의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80세의 모택동이 직접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번 운동은 66년∼69년의 문혁이 수정주의에 대한『조반』을 목표로 삼은 데 비해 수천 년간 쌓여온 중국의 의식구조에 대한『반 조류』를 내걸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와 같은 움직임이 단순한 임파 잔당 제거이상의 복선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베토벤」과「슈베르트」의 음악이『「부르좌」적』이라고 공격받은 것은 작년 9월 미「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의 북경방문연주를 듣고 박수를 친 강 청에 대한 겨냥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2백 명이 비판 연설>
그리고 공자의 특성을「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해석한다면 화살은 주은래 쪽으로 날아갈 수도 있다.
한데 북경인·청화 인의「대중비판운동단체」가 공동으로 작성, 당 이론 지『홍기」2월 호에 개재한 논문은『임표의 광범한 조직적 음모를 뿌리뽑기 위해 장기간의 강력한 투쟁을 해야』하며『혁명적 소동은 필요한 것』이라고 못박았다.

<모, 연속 혁명 논에 근거>
이와 같은 표현은 정치적 숙정이 임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주 광동의 군중대회에서 한 당 간부가 이번 투쟁을『우리 내부의 위해』에 대한 것이라고 밝힌 사실이라든가 「남방일보」가『「비림비공」은 특히 지도급에서 일하는 간부들에게 주요한 시험이 될 것』이라고 보도한 점은 이러한 인상을 더욱 짙게 한다. 일부에서는 금년 초 지방 주요 관구의 사령관들이 대폭 이동되고 등소평이 당정치국에 복귀한 때와 거의 동시에「비림」운동이 활발해졌다는 사실 등에서 무엇인가 암시를 읽으려고 한다.
물론 중공의 공식입장은 이와 같은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인한다. 사실 모는 이미 67년에『이번 문혁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선언, 이른바 연속혁명 론을 밝힌 바 있는 것이다.

<왕홍문도 새 문혁 역설>
물적·제도적 사회주의혁명이 진척되는데 따라 의식구조의 혁명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모의 주장은 지난 십전 대회에서 왕홍문에 의해 다시 한번 확인되었었다.
왕은 정치보고를 통해『문 혁과 같은 정치혁명은 앞으로 몇 번이고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어쨌든 중공정부가 49년 공자저서의 신판을 발간했던 사실과 대비해보면 존유 조류에 대한 모의 도전은 중공의 사회주의 건설난제가 중요한 국면에 들어가고 있음을 뜻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극좌폭도는 억제할 듯>
그러나 공자비판을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한가지 점에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66년∼69년의 문 혁과 같은 혼란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극단적인 좌파의 난동으로 워낙 애를 먹었던 터이므로『극좌폭도』을 될 수 있는 대로 억제할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북경의 공장과 식당, 상해의 부두 등에 대형벽보가 나붙고 각성마다 수 10만 명의 노동자·군인·학생들을 동원하여 군중대회를 열고 있지만 이들이 또 다른 홍위병으로 변신할 가능성은 억제되고 있는 것 같다. 어떻든 중공의『반 조류』운동이 이 시대의 조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좀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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