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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개선을 위한 「시리즈」(13)|음식점 배달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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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얘 너 ○○아니냐. 그래 서울서 뭘 하니?』『……』중국집 C루의 배달소년 정모군 (17·서울 중구 북창동)은 오랜만에 뵈는 고향 어른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뒷머리만 긁었다. 부끄럽고 난처해 중국집에 있다고 바른말을 못했다는 것. 억센 화상의 상혼과 분식 장려책은 중국집에 호경기를 가져다주었다. 중국집마다 용케도 열대여섯살짜리 소년들을 구해 배달을 시키고 있다. 체구도 자그마하고 또렷또렷한 녀석이 인기다.
어느날 낮 12시쯤 정군은 자장면 6그릇을 담은 「알리미늄」 배달통을 들고 길 건너 「빌딩」의 6층 계단을 힘겹게 걸어 올라갔다. 무역 회사 간판이 붙은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서니 『이××, 왜이리 늦어!』『다 식어빠졌잖아.』 한꺼번에 욕설이 튀어 나왔다. 때로는 『되놈』소리도 들어야 한다.

<청소·그릇 닦기까지>
그러나 정군, 『바빠서 그래유-.』 의례 그러려니 씩 웃으면서 자장면 그릇을 차려 놓는다. 정군은 보통 하루 30여 차례나 배달을 나가 주방이나 주인의 잘못에도 혼자 욕을 뒤집어쓴다.
정군의 고향은 청주. 중학 2년을 중퇴하고 2년 전 서울에 왔다. 홀어머니는 떡 행상으로 다섯 식구의 끼니를 잇고 있어 정군 자신의 입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효도하는 길이었다는 것. 아침 7시에 일어나면 자기또래 4명과 함께 청소를 시작한다. 「홀」을 물걸레로 닦고 「테이블」 16개를 정리한다. 물에 씻은 대젓가락을 포장지에 넣고 간장·고춧가루 그릇을 채워놓는다.
그리고는 주방에 들어가 자장면 그릇과 접시를 닦아야한다. 돌아서면 점심시간.
낮 l2시부터 1시간 동안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하루 손님은 평일에 2백50여명이나 수요일과 토요일 분식날에는 4백명도 넘는다. 손님들은 주문이 끝나기가 바쁘게 『빨리 가져 오라』고 들볶아 댄다. 정군은 『왜 우리가 욕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손님들이 좀 따뜻하게 대해 줬으면 했다.

<월급 4천∼8천원>
정군 등은 「에너지」 파동 덕을 보고 있다. 그전까지는 밤 11시까지 문을 닫지 않아 자정이 지나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으나 영업이 1시간 단축되는 통에 그만큼 쉴 수 있게 됐다. 정군의 월급은 8천원. 1년짜리의 배달원은 4∼5천원의 「용돈」을 받고 하루 16시간을 일하는 경우도 있다. 정군은 월급에서 1천원을 공제 당한다.
배달 나갔다가 계단에 쓰러져 그릇을 깨거나 그릇을 닦다가 깨는 경우 혹은 배달한 그릇을 잃어버렸을 경우에도 주인은 어김없이 그릇 값을 물리기 때문이다. 남은 돈으로 옷가지를 사 입고 한달에 두번 외출하는 날 극장 구경이라도 하고 나면 고향에 송금할 여유가 없다. 정군은 지난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고향에 다녀왔다.
그러나 직업소개소에 부탁하여 대신 일할 소년을 구해 놓아야 했고 휴가 기간 중 일당이 봉급에서 공제되었다.
요릿집에서 일하니까 누구보다 잘 먹을 것 같지만 이른바 「요리」는 그림의 떡. 콩나물 반찬과 깍두기가 고작이다. 특히 정군의 중국인 주인은 노랑이로 소문나 있다는 것. 정군은 통「기타」를 배우고 있다. 일 끝난 뒤 동료들과 어울려 「기타」를 치면서 유행가를 부르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란다.

<배울 수 없고 수치감>
정군은 2년 동안 중국집에서 일했지만 아직 국수를 뽑는 기술도 배우지 못했다. 배달원은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하는 일이란 단순 노동에 지나지 않는다.
배울 것이 없는 직장에서 수치감을 느끼는 것이 중국집 「보이」의 공통된 고민이다. 정군은 『군대 가기 전까지 이짓을 하다보면 다음에 어떻게 살지 막연하다』고 했다. 그래서 무슨 기술이라도 배우고 싶지만 돈이 없고 시간이 없다고 탓한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소년들에겐 책을 보거나 학원에 다닐 수 있는 여유를 열어 주는 것이 시급하다.
서울역 건너편 설렁탕집 K옥의 배달소년 김군은 이제 겨우 15살. 김군의 일은 더욱 고되다.

<새벽 4시 여관 출입>
새벽 4시가지나 서울역에 승객이 내릴 때쯤부터 식당은 붐비기 시작한다.
김군은 서울역 부근의 여관마다 새벽 배달을 나간다.
설렁탕 그릇을 받쳐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어린 나이에 봐서는 안될 것도 보게 된다는 것.
김군의 아버지는 2년 전 열차 사고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외아들을 버리고 가출했다. 어린 김군의 가슴속에는 남모를 결심이 서 있다. 한달에 5천원씩 받는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18살이 되면 자동차 운전 기술을 배우겠다는 것. 대부분의 배달 소년들이 다른 직장으로 옮기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지만 개중에는 불우한 환경에 도전하는 강한 소년도 있다. <지원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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