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그로미코 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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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의 쿠바 방문과 때맞추어 소련 외상 그로미코는 4일 워싱턴을 방문, 미국 수뇌자들과 일련의 회담을 갖고 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제 정치의 조류를 주도해 온 데탕트 기운은 73년에 들어 월남전의 종식, 구주 안보와 상화 병력 감축 회담의 진전, 그리고 최근의 중동 휴전 성립 등에 이르기까지 점차 뒤로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돼 가고 있음을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데탕트 무드를 굳혀 항구적인 세계 평화의 토대를 이룩하기까지에는 아직도 세계 초강대국가인 미·소간에 합의해야 할 것이 허다한 만큼 중동 휴전의 정치적 타결, 제2단계 전략 무기 제한 (SALT) 문제 등을 다루게 될 이번 미·소 수뇌 회담의 귀추는 우리로서도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구체적인 문제의 해결과 소련의 진의·성실성을 직결시키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데탕트에 대한 미·소간의 사고에 아직도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데탕트를 통해 항구 평화의 토대 구축과 도발 및 적대 행위의 포기, 그리고 긴장 완화를 위한 전진적 조처를 소련에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소련의 내심은 여전히 데탕트를 『환상 없는 공존』으로 간주, 당 기관지 「프아우다」에서 명시한 바와 같이, 초강대국의 국제적 책임이나 항구 평화 구축을 위해서 보다는 단순히 국가 이익의 신장을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브레즈네프의 쿠바 방문과 키신저·그로미코 회담은 서반구 지역에서 아직도 불안정의 씨로 남아 있는 미·쿠바 관계에 어떤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가 오랫동안 정상화되지 않는 이유는 쿠바의 대미적대 태도와 카스트로의 혁명 수출 시도에 있었다.
그런데 그 쿠바의 후견국 소련이 브레즈네프를 통해 앞으로 『혁명 수출을 지윈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만일 그것이 카스트로의 의향을 대변한 것이라면, 미·쿠바 관계 정상화에 커다란 장애를 제거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동 문제에 있어서는 미·소의 직접 대결 없이, 또 양대국의 주선으로 휴전이 성립했으며, 주교전국인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병력 격리 협정이 체결되어 운하에서의 전쟁 재발 위험이 일시나마 줄긴 했으나 시리아 등의 협상 거부로 국지적인 교전이 그치지 않는 가운데 불안정한 휴전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제2단계의 본격적인 정치 협상이 결실을 보려면 당직자들만의 흥정만으로 불충분하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며 미·소 양국의 배후 종용·영향력 행사·세계 평화 유지 관점에서의 적극적 협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중구에서의 NATO 및 바르샤바 동문의 병력 감축도 그것이 상호 균형을 통한 안보 조치로 발전하려면 소련과 그 동맹국들이 지상 병력과 장비의 우위 유지를 계속 고집하는 한 균형잡힌 상호 감축으로 결실을 보지 못할 것이다. 소련의 데당트가 서방의 그것에 접근하고, 항구적인 평화 구축으로 이어지려면 진정한 의미의 군비 감축에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또 전략 핵무기 제한 문제에서도 소련이 핵탄두 운반체의 수적인 우세를 견지하면서 다탄두 개별 목표 공격 기술의 낙후성 극복에만 급급 한다면 제2단계 SALT 협상 목표인 수적·질적 제한은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고 핵 군비 경쟁의 악순환을 되풀이할 것이다.
74년의 국제 정치 향방은 구체적인 국제 문제 해결에 소련이 임할 태세에 크게 좌우될 것이며 데탕트에 대한 소련의 진의와 성실성이 저상에 올라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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