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무너진 「김인 아성」 기계의 판단 새 국면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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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 왕위가 된 하찬석 5단(25)은 일본서 귀국한 3년 만에 왕위와 국수의 2관 왕으로 한국 바둑계의 정상을 정복했다.
이날 대국이 끝난 다음 새 왕위가 된 하 5단은 『운이 좋았을 뿐이죠』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제4국은 서로 어려운 바둑이었는데 김 7단이 완착을 놓아 이길 수 있었다고 겸손해 했다.
또한 패장이 된 김 7단은『할말이 없습니다. 제 헛점을 하 5단이 잘 지적해 주었어요』하면서 담담하게 웃었다.

<"내 허점을 잘 포착" 김인 7단>
7년 간 지켜온 김인 아성을 깨고 새 왕위가 탄생함으로써 기계의 판도는 크게 달라졌다. 우선 하5단이 왕위와 국수를 가졌고, 서봉수 3단이 명인과 MBC배, 조훈현 5단이 최고위, 그리고 노장 조남철 8단이 최강자 등을 각각 차지했다.
한편 60년대 일본서 돌아와 국내 바둑계를 휩쓸었던 김인 7단과 윤기현 7단은 무관으로 떨어졌다. 특히 한 때 왕위국수 명인 최고위 등 주요「타이를」을 독점했던 김7단이 무관이 됐다는 것은 이제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7단은 73년도에 국내 62명 전기사중 승율 제1위를 기록했으며, 현재 진행중인 백남배 전에서는 승자결승을 이겨 최종결승에 올라감으로써 무서운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왕위전 8년 만에 새 주인으로 등장한 하 5단은 침착하고 실수가 없으며 형세 판단에 밝고 싸움에 남달리 힘이 세다고 동료기사들은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판의 대국 중 국내기사들은 한두 차례 실수를 범하지만 하 5단은 실수가 없고 상대방의 실착을 놓치지 않고 공격함으로써 승기를 잡는다는 것이다.
70년 4월 일본기원 4단으로 귀국한 다음 그는 한국기원에서 4단을 받았고 71년 승단대회에서는 12전 전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72년 가을에 5단으로 승단 했고 지난해 7월 군에서 제대한 다음 계속 성적이 좋아 11월에는 국수전에서 윤기현 7단에 3대 1로「타이틀」을 쟁취했다.
하 5단은 우뚝 솟은 코와 반면을 뚫어보는 반짝이는 눈에서는 날카로움이 번뜩이지만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의 대화에서는 인간미와 겸손함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경남 합천 태생으로 하문선씨(68)의 3형제 중 막내. 10세 때부터 부친이 친구들과 두는 바둑을 어깨너머로 배워 상당한 실력이 되자 부친은 14세 된 하5단을 데리고 서울에 올라와 당시 송원기원을 경영하던 조남철 8단에게 지도를 부탁했다.
하 5단의 기재가 뛰어남을 안 조8단은 15세 된 하5단을 일본에 있는 그의 은사「기다니」씨에게 소개했다. 그러나 처음엔「기다니」씨도 하5단이 나이가 많아 힘들다고 잘 받아주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프로」기사로 대성하려면 6세 때부터 전문적으로 바둑수업을 해야하며 13∼14세에는 입단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하 5단의 나이가 이미 15세였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는 것이다. 뒤늦게 본격적 바둑수업을 시작한 하5단은 단기계획을 세우고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다니」문하에서 4년 동안 각고 끝에 하 5단은 67년 19세 때 입단의 영예를 가졌다. 그는 그 해에 입단을 못하면 나이가 차서 일본기원연구생 자격도 없어지고 아주「프로」지망을 포기하려고 했었다는 것이다.
한번 입단한 그는 그 해에 바로 2단으로 승단하고 68년에, 3단, 69년에 4단으로 승단한 후 병역관계로 7년 간의 도일 수업을 끝내고 70년 4월 귀국했다.
귀국 후 3년 간의 군복무를 마친 그는 군에 있는 동안 바둑수업에 지장이 많아 좋은「찬스」를 많이 놓쳤다고 말하고 있다. 군에 있는 동안은 휴가로 나와 바둑을 지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감으로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훈현 5단과 함께 일본서 돌아온 다음 새로운 기풍을 일으키고 있는 하 5단은 한·일기사의 수준에 대해『아직까지는 비교가 안 된다고 봐야 할겁니다』고 잘라 말한다.
『같은 단위의 한·일기사가 바둑을 두면 실력의 차이는 없어요. 그러나 승부에 가서는 지게 되요. 그것은 정신적 자세가 문젭니다.』 처음부터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과는 승부에 임하는「프로」기사로서의 자세가 다르기 마련이라고 그는 말한다.

<아마바둑 보급 시급>
국내기사들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바둑을 연구하는 분위기가 돼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기사들의 생활안정이 급선무라고 그는 강조한다.
처음 귀국할 때만 해도 다시 일본에 가서 3, 4년 정도 입단 때 같이 공부해 보고 싶었다는 그는 그러나 군복무를 마친 다음 건강이 좋지 않아 망설여진다고 했다.
국내에 더 있게되면 바둑보급에 힘쓰겠다면서 그는 제일 시급한 것이「아마추어」바둑의 보급이라고 강조했다. 하 5단은 아직 총각으로 마포의 형님댁에 살고 있다. 결혼은 앞으로 2, 3년 더 있어봐야겠다면서 금방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했다.<이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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