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우리 오빠' 새겨진 명품 시장, 쑥쑥 커가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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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가수가 무대에서 입었던 옷을 입고, 그의 얼굴이 인쇄된 쿠션과 무릎담요로 몸을 감싼다. 그의 이름이 새겨진 연필과 노트로 공부를 한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좋아하는 연예인 관련 상품으로 꾸밀 수 있는 날이 왔다. 바야흐로 아이돌 '굿즈'(goods·연예인 관련 상품의 일본식 표현으로 한국에서도 통용된다) 전성시대다. 단순히 아이돌의 노래를 듣고 즐기는 차원을 넘어 그들을 입고, 치장하게 되면서 아이돌이 지닌 경제적 효과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웬만한 업종을 뺨치는 규모로 성장해가는 ‘아이돌 부가 산업’ 속으로 들어가봤다.

SM엔터테인먼트·YG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에게 2013년은 굿즈 시장의 중요한 전환 시기였다. SM은 오프라인 팝업스토어(한시적 매장), YG는 온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각각 굿즈의 판로를 개척했다. 팝업스토어와 온라인샵이 활성화되기 이전엔 콘서트 현장이 굿즈의 가장 큰 판매 통로였다. 아이돌 굿즈는 기본적인 상품을 제외하곤 앨범이 발매될 때, 콘서트를 열 때 한정 상품으로 10~30종 가량 제작된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달짜리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매장이 열렸던 것. 이는 앨범 홍보 활동과 함께 가는 특성 때문이다.

엑소(EXO)

SM의 굿즈 시장

SM은 올해 명동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팝업스토어와 신사동 엑소(EXO) 전용 팝업스토어 BWCW, 기존의 자사 노래방 체인 에브리싱까지 오프라인 굿즈 매장을 5곳으로 확대했다. 매장엔 총 3000여 종의 상품이 진열돼 있다. 그 결과 SM의 2013년 굿즈 상품 매출 규모는 전년 대비 5배 성장했다.

영플라자 팝업스토어는 지난해 초 소녀시대 앨범이 나왔을 땐 12일간 6억 3000만원 매출을 기록했다. 지금은 동방신기부터 엑소까지 SM타운 소속 연예인 전체의 기념품을 모아 운영중이다. 3만원 이상 구매 고객에겐 구석에 마련한 V씨어터에서 미니 홀로그램 영상물도 보여주고 있다.
엑소 전용샵인 BWCW는 더 발전된 형태를 보여준다. 문구류부터 의류·생활용품까지 엑소와 관련된 다양한 상품 150여 종을 구비하고 매장 곳곳엔 엑소 멤버들의 낙서를 남겼다. 엑소의 이름을 붙인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도 마련했다. SM에브리싱 김미경 팀장은 “단순히 물건만 사는 곳이 아니라 팬들이 추억도 만들고 기념품도 구입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SM은 온라인 매장은 운영하지 않는다. 김 팀장은 "클릭 한 번으로 주문해서 쉽게 구하는 것보다는 발품을 팔아 현장에 와서 어렵게 구할 때 더 의미가 담긴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구입 장소와 시기가 한정적이다 보니 자체적으로 구매대행 서비스를 하는 블로거도 등장했다. 물품 한 개당 대행료 1000원에 배송비를 받아 대신 사서 보내주는 식이다. 인터넷 중고 카페에선 품절된 중고 물품이 정가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김 팀장은 “연예인 굿즈는 많이 찍어 팔수록 좋은 여느 공산품과는 다르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상품으로 방 하나는 꾸밀 수 있을 만큼 다양하고, 오랫동안 소장해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프리미엄 상품을 개발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엑소 앳 홈’이라는 침구류와 부엌 살림류, 나아가 엑소 파자마까지도 상품 기획 중이라고 한다.

빅뱅

YG의 굿즈 시장

YG의 공식 굿즈 유통 경로는 온라인 ‘YG이샵(www.ygeshop.com)’이다. 현재 YG이샵에 진열된 상품은 약 180종. 그 중 빅뱅이 100종으로 과반수를 차지한다. YG 색깔이 뚜렷한 의류와 모자, 완구회사인 오로라월드와 합작해 만든 YG베어, 공식 응원 도구 등이 팔리고 있다. 1년 여 전엔 중국어 사이트도 문을 열었다. 불법 복제품이 많은 중국에 직접 공식 굿즈의 판로를 개척했다는 의미가 크다. 또 다국적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에도 입점해 전세계 K팝 팬의 접근성을 높였다. YG 사업개발본부 유해민 실장은 “2013년 한·중국 온라인샵 굿즈 매출만 약 6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샵에서 판매되는 앨범 매출은 제외한 수치다.

유 실장은 “통계엔 잡히지 않지만 굿즈의 천국인 일본 콘서트 현장에서 팔리는 금액도 한국 시장을 뛰어넘을 만큼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YG는 일본 현지 파트너인 에이벡스에 판매 권한을 주고 여기에서 로열티를 받는다.

YG의 유일한 오프라인 굿즈 매장은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 있다. 지난해 7월 에버랜드와 함께 만들었다. 'K팝 홀로그램 공연장'에서 홀로그램으로 구현한 콘서트를 보고 나오면서 YG 가수들의 기념품도 살 수 있게 한 것이다. YG는 제일모직과 함께 조인트벤처 ‘내추럴 나인’을 설립해 내년 봄·여름 시즌을 목표로 의류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디자인에는 양현석·테디 등 YG의 프로듀서들이 참여한다.

이밖에도 비스트·포미닛 등이 소속된 큐브엔터테인먼트가 온라인샵 '큐비(www.cubee.co.kr)'를 운영하고 있다. 교보문고 핫트랙스·예스24·인터파크·신나라·숨피샵 등에서도 아이돌 관련 상품이 유통된다.

성장하는 굿즈 시장

연예인 굿즈 시장은 전세계적으로도 성장세다. 세계 최대의 음반 유통사인 유니버셜 뮤직 산하의 MD(merchandize, 상품) 제작사 브라바도의 글로벌 매출은 2012년 3500억원에 육박했다. 전년 대비 20% 성장한 수치다. 브라바도 코리아의 국내 매출 역시 2011년부터 3년간 매년 두 배로 뛰었다. 팝이 한국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면서 10%에도 못 미치는 상황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다.

유니버셜뮤직 관계자는 “전통적인 굿즈인 티셔츠 외에도 스마트폰 케이스의 비중이 5분의 1쯤 된다. 라이선스 뮤지컬 시장이 성장하면서 ‘맨 오브 라만차’ ‘위키드’ 등의 케이스도 한몫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엔 유니버셜이 유통한 조용필 19집 ‘헬로’ 관련 굿즈가 매출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며 성장을 이끌었다. 오늘날의 K팝 아이돌에 앞서 80년대에 이미 '오빠 부대'라는 현상을 만들어낸 원조 팬덤의 힘이다.

SM 김 팀장은 "연예인 관련 상품도 또 하나의 한류다. 패션을 비롯해 다른 시장 부문과도 맞물리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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