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로 자 털려던 강도단의 주범은 기자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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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년 들어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한 화제 제1호는 작년 연말에 일어났던 유력지 피가로를 털려던 희대의 살인 강도 사건이다.
섣달 그믐날의 흥청대던 유명한 샹제리제 대로에 10여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1명의 행인이 강도단의 총격에 맞아 피를 토하며 죽고 추격하던 경찰관을 포함한 3명이 중상을 입는 수라장이 되었었다.
그런데 이같은 사건이 단순히 하나의 강도 사건으로만 끝났다면 금년 초 화제1호를 기록할 수 없었을 터인데 문제는 강도단의 배후에 피가로 사의 기자가 끼여 있었다는 사실이 경찰의 수사 결과 밝혀졌기 때문이다.
수개월 전부터 이 기자는 신문사의 봉급이 어디를 통해 몇 시에 들어오는가를 면밀하게 관찰했으며 연말 보너스 4백%를 포함, 가장 거액이 지출되는 연말을 D 데이로 택했던 것인데 하수인을 고르는데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 하필이면 라틴 파리의 블랙·리스트에 제1호, 4호, 7호에 올라 있는 전과자와 공모했기 때문에 연말·연시 비상경계로 경찰이 무조건 미행했던 것이다. 물론 경찰은 미행과정에서 몽마르트르의 어느 술집에서 기자와 무장강도단이 만나 모의하는 장면까지 모두 포착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경찰은 이들이 범행하기 전에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체포하지 못하고 계속 미행만 했다고 그래서 사건 당일인 구랍 30일 하오. 3시 30분에는 피가로 신문사가 경찰의 포위 하에 있었다.
3명의 무장 강도단은 기자가 준 정확한 장소에 따라 신문사 경리부에서 수백만 프랑의 돈을 강탈해 나오다가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던 것이다. 이들 강도단은 이날 안에 모두 일망타진되고 신문사의 봉급과 4백% 보너스에는 아무런 탈이 없었다.
경찰은 그때까지 편집국에 태연히 앉아 있던 기자를 덜컥 체포했는데 천하의 흉악무도한 강도만의 배후에 기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모두들 아연실색.
경찰조사 결과 경마를 비롯한 도박에 몰두했다가 큰 빚을 짊어지게 된 것이 이 기자의 범행 동기로 밝혀졌지만 무엇보다도 왜 경찰이 범행 직전에 이들을 잡지 않았느냐는 것이 화제의 촛점.
예방 경찰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이 있기는 하지만 경찰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사람을 마구 잡느냐고 변명하고 있다.
어쨌든 프랑스 경찰은 너무나 인권을 존중한 끝에 오히려 사건을 예방 못한다는 초 민주 경찰이라 할까?<파리=주섭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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