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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작전' 전날 특전요원 추어탕 대신 닭국 먹은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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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해군작전사령부 부산기지에서 열린 해군 청해부대 15진 환송식에 참석한 황기철 해군 참모총장. 송봉근 기자

16일 오전 10시 30분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부두. 우리 상선 보호 임무를 띄고 아덴만으로 향하는 강감찬함(KDXⅡ-4400t급)에는 “대한민국 국민과 선박 청해부대가 지키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2009년 3월 청해부대가 창설된 이후 15번째 파병이다.

그동안 청해부대는 아덴만에서 9230척(외국선적 상선 3950척 포함)의 국내외 상선들을 해적들로부터 지켜냈다. 2009년 4월 17일 아덴만지역을 항해하던 덴마크 선적 푸마호에 달려들던 해적을 퇴치한 것을 시작으로 21차례어 걸쳐 31척을 구조했다. 2011년 1월 21일 소말리아 해적들에 피랍됐던 삼호 주얼리호(선장 석해균)를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은 우리 측 인명피해는 없이 해적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한 완벽한 작전으로 꼽힌다. 당시 해군작전사령관으로 작전을 진두지휘했던 황기철 해군참모총장(해군 대장)을 강감찬함이 출발하기 직전 함정안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함상과 부두에서 진행됐다.

-지난해 10월 해군참모총장이 된 후 청해부대 환송식을 하니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벌써 3년이 지났다. 당시 일주일 동안 잠을 설치며 작전을 펼친 곳에 와서 환송식을 주관하다보니 그날(아덴만 여명작전)이 어제일처럼 생각난다. 미국과 중국, 프랑스 등 14개 나라에서 해군을 아덴만에 보내 자국 상선들의 항해를 보호하는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낀다. 강감찬함도 임무를 잘 완수해 주길 바란다.”

- 아덴만 여명작전은 해외에서 우리 국민을 구출한 첫 작전인데.

“승리하는 군대가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기회였다. 내년이면 해군 창군 70년을 맞는데 해군 역사에서 첫 해외 구출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뤘다. 세계 각지에서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나아가 다른 나라 선박도 보호하는 만큼 대한민국의 국격도 높아지고 해군의 해외작전 능력도 대폭 향상됐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떨어져 있던 우리 해군의 사기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2008년 소말리아 지역에 해적이 기승을 부리자 각국은 해군을 파병하고 일부 선박은 무장경호원을 태우는가 하면, 사설 경비업체를 고용하고 있다. 선박 1회 호송에 최소 10만달러의 용역비를 지불한다. 청해부대가 우리 선박 5280척을 호송했으니 5억 2800만 달러(약 56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달성한 셈이다. 그러나 황 총장은 “우리 국민들이 수만리 떨어진 먼 바다에서 안심하고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단순히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아덴만 여명작전은 두차례의 실패끝에 진행했다. 2010년 4월 해적에 피랍됐던 삼호 드림호를 구출하기 위해 충무공이순신함이 2000여㎞를 이동했지만 해적들이 소말리아 영해로 들어가는 바람에 눈앞에서 놓쳤다. 아덴만 여명작전 사흘전 시도했던 1차 구출작전은 해적들의 공격으로 실패했다. 그래서 더 철저한 준비를 했다.

- 어떻게 준비했나.
“김관진 국방부 장관과 한민구 (당시) 합참의장이 전권을 줬다. 준비부터 작전 계획수립, 작전실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맡겼다. 준비 상황만 보고했다. 오히려 부담이 많았다. 그런만큼 준비를 철저히 했다. 다른 나라의 통계와 구출 사례를 찾았지만 경험이 없다보니 쉽지 않았다. 해적들은 많은 경험과 훈련이 돼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꿈에서라도 얘기해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해상작전 경험이 없던 소위에서부터 베테랑 제독들까지 작전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해적의 허점을 파고 들었다. 특수전 장병들이 이동할 보트를 내리는 방향과 운항 속도, 선박에 오르는 장소와 시간, 삼호 주얼리호 내부에서의 작전 등 모든 것을 분, 초 단위로 연습토록 했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구조에 투입되는 장병 헬멧에 카메라를 달아 전송토록해서 실시간으로 보면서 작전을 지시했다.”

당시 해군은 부산 인근에 삼호 주얼리호와 크기와 내부구조가 비슷한 선박을 구해 실제 승선하며 작전을 실시하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이동시간과 작전 매뉴얼을 만들어 현지(최영함)에 전달했고, 다행히 시나리오대로 작전이 이뤄졌다. 아덴만 여명작전 이후 청해부대에 선발된 특수전 부대는 출발전 상선에 사다리로 올라가 구조를 파악하는 관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또 해적 구출 매뉴얼도 만들었다.

-우리 선원들의 피해가 전혀 없었다.
“우리 국민들의 피해가 없어야 한다는게 가장 큰 목표였다. 작전 시나리오에도 이를 반영했다. 먼저 해적들이 한국어를 못알아듣기 때문에 통신을 통해 공격이 시작되면 엎드리라는 무전을 했다. 해적들이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 식량이 있는지, 어떻게 전달하면 되는지 상의했다고 말하라고 했다. 탄알이 선실내에 들어가면 여러 방향으로 튀어 다칠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링스헬기와 최영함에서 기관총을 쏠 때 연돌(상선 배기구)을 향해 쏘도록 했다. 미사일을 탑재한 해적함이 다가오고 있다는 정보를 주는등 우리 정보기관과 외교부의 도움도 컸다. 또 미국에서 지원해준 P-3C 초계기에서 해적들의 위치를 사전에 파악해 둔 것도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고도로 훈련된 우리 장병들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제압이 가장 큰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공개안된 에피소드는 뭐가 있나.
“작전 전날, 그러니까 2011년 1월 20일 점심때 부대식당 주방장이 힘내라는 뜻으로 추어탕을 끓였더라. 순간 특전요원들이 선박에 올라가다 미끄러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사들 식당 메뉴는 뭐냐고 했더니 닭국이라고 해서 그걸 가져오라고 했다. 닭은 한번 발톱으로 잡으면 놓치 않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작전에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황 총장은 인터뷰 도중 청해부대 최영함이 준비하고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과 총상을 입은 그를 치료하기 위해 현지로 날아온 이국종 아주대 교수에게 고마운 뜻을 밝혔다. 해군은 현재 KDX-Ⅱ함정을 6척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 척은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고, 한 척은 파병준비 및 현지 이동, 또 한 척은 파병후 수리를 하고 있다. 6척 가운데 평균 2.5척이 청해부대에 묶여 있는 셈이다. 그래서 청해부대를 철수해야 한다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다.

- 최근들어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청해부대를 철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 군은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고 있다. 전투가 벌어지면 반드시 이기는 게 가장 큰 임무다. 우리 장병들이 잘 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수출과 수입의 비중이 높다. 세계에서 건조되는 선박 25%를 우리나라에서 만들고 전세계 물동량 10%를 우리 선박들이 실어 나른다. 이들을 보호하는 것도 해군의 임무다. 대한민국의 경제 전사들이 세계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선박의 안전은 그냥 지켜지는 게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청해부대는 국가 경제를 지킨다고 할 수있다. 그동안 21차례에 걸쳐 31척의 선박을 해적과 조난으로부터 구조한 성과도 있다. 아덴만에서 해적 활동을 줄어들고 있지만 잘 훈련된 해적들의 활동은 말라카해협와 인도양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청해부대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전력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잘 준비해 안보도 지키고 세계 각국에 나가서 활동하는 경제전사들도 보호하도록 하겠다.”

16일 환송식에 참석한 황 총장은 300여명의 강감찬함 승조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선크림과 태극기가 들어있는 작은 상자 하나씩을 선물로 줬다. 태양이 뜨거운 해양에서 피부도 보호하고, 태극기를 항상 품고 대한민국 해군으로서 자긍심을 잃지 말라는 뜻이었다.

부산=정용수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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