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나그네 김찬삼씨 아마존 비경 탐험(4)|「필리핀」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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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마닐라」는 뜻밖에 들르기 되었는데「홍콩」에서도 받지 못했던 여러 나라의「비자」를 더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이 나라 남쪽의「세부」섬 앞의「막탄」섬 해안에 있는 저 유명한 항해가「마젤란」의 피살지를 찾았다. 이젠 「세망」섬과「막탄」섬 사이를 이은 약 5백m의 고가교가 놓여있어서 쉽게 다닐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강 섬이 많은 나라인만큼 섬을 잇는 이런 교통이 무엇보다도 큰 정치적인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몇해전에 들렀을 때보다 이 나라의 교통은 훨씬 더 발전한 것이다.
「마젤란」은「포르투갈」태생으로 그의 세계1주는「스페인」의 후원으로 이룩된 것이다. 「필리핀」을 그가 발견했을때 그의 조국「포르투갈」보다는 당시의 「스폐인」왕「필립」2세의 이름를 따서 나라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그는 신대륙의 남쪽끝인「마젤란」해협을 지나고 태평양이라고 최초로 지도에 기입하였으며 남태평양의 많은 섬을 발견 하였었다.

<원주민과 싸워 전사>
그가 이「필리핀」의「세부」섬에 상륙한 것은 1521년4월14일 이었다. 그는 이「세부」섬을 근거지로 하기 위하여 이 주변의 추장들을 눌러 그의 손아귀에 넣었었다. 그런데「마겔란」은 정박지로서는「세부」섬보다는 그 앞섬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앞섬의 추장이 완강히 거부하므로 몸소 타협을 지으려고 건너가기로 했다. 시비 끝에「마젤란」족과 추장쪽이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마침 산호초에 조수가 빠져서「마젤란」이 타고 온 배가 움직이지 못하여 매우 불리하게되었다. 그리하여 원주민과의 싸움에서 전투원의 부족으로「마젤란」쪽이 몰리게될 뿐 아니라 그의 어깨며 옆구리며 여러 군데가 칼에 찔려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이 죽음은 그가「필리핀」에 상륙한 사흘째의 일이다.
18세기에 태평양을 개척한 영국의「제임즈·쿠크」가「하와이」의 토민에게 피살된 것과도 같다.
그런데 이에 관한 어떤 책을 구해보니까 그는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싸우다가 기사의 모습으로 칼을 안고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그는 키는 크지 않았으나 다부졌다』고 씌어있다. 어떤 벽화에는 그는 추남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그는 추남이니까 나라안에서는 자기를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기 때문에 세계로 뛰쳐 나간지도 모를 일이다.
이「마겔란」피살지는 벌써 5세기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눈을 감고 그 때의 역사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갖은 고생을 겪으며 항해해와서는 이곳에 상륙하여 싸우면서 호령한 이 모습이「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그리고 그가 피를 흘리고 쓰러졌으리라고 생각되는 곳을 더듬으며 『오,위대한「마젤란」이여』하고 불러보았으나 아무런 메아리도 없다. 역사적인 피추가 있어 그와는 교감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서글펐다.

<외세에 시달린 역사>
나는 그와 스스로를 비교해보았다. 동과 서, 뜨는 연대가 다를뿐 추남과 다부진 체격, 그리고 세계를 한번 안아보겠다는 뜻은 방법만 다를뿐 마찬가지가 아닌가.그리고 그는 칼로 세계를 정복했고 나는 우정으로 세계를 내 품안에 껴안을 뿐 조금도 다름이 없지 않은가.
「마젤란」의 입김이 서린 이 유서깊은 곳에 와서 새삼스럽게 그를 재평가해 보며 추도사를 읊조려 보았다. 남을 해치면서까지 약자를 정복하는 것은 죄일는지 모르나 목숨을 걸고 먼 동양까지 탐험하는 그의 용기는 높이 사야 할 것이 아닌가.
그는 현대의 사상적인 정복이나 무력적인 정복보다는 얼마나 순수한가. 어쩌면「니체」적인 권력의지의 표현인지드 모른다.
이 나라는 예부터 중국「말레이지아」「인도네시아」등 이웃나라 세력의 영향을 받았다. 근세에는「스페인」의 식민지로 있었고 그 뒤엔 미국의 통치를 받았으며 태평양전쟁때엔 난데없는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그러다가 1946년 독립이 되었으니 이른바 동서양의 혼혈아가 된 셈이다. 이 나라도 세계 여러 후진국이 그렇듯 주체성울 찾으려고 몸부림치고있다.

<라푸라푸·데이 기념>
이미 옛날부터 여러나라 피로 혼혈이 되어 자기의 조상이 순수하게 원주민이라고는 볼수 없지만 이「막탄」섬에서는「마젤란」을 죽인「라푸라푸」추장을 기념하기 위하여 해마다 4월27일은 「라푸라푸·데이」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지난해 봄 4백52주년 행사는 다채로 왔다고 하며 앞으로는 이 기념일이 더 성대해지리라고 한다. 민족주의 사상의 부흥은 세계사적인 현상이지만 이 나라도 강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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