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화「붐」의 득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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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에서는 12월초까지 30점의 기록화제작을 마쳤다. 금년에 주어진 주제는 「발전하는 한국의 산업」. 30명의 유화가에게 의뢰하여 각각 3백호씩의 대작을 만들어 내게 한 것이다. 작년에는 10명의 동·서양화가를 파월, 「월남전의 기록」을 화폭에 담게 하였다. 71년에는 「새마을 운동 기록화」를 제작했고 70년에는「산업개발기록화」를 그리게 했다. 이러한 기록화들은 67년에 있었던 1천호 55폭의 민족기록화를 시발로 하는 일련의 장기작업이다. 유구한 민족의 역사와 변모하는 오늘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해두려는 방대한 계획의 일환이다.
문공부가 발표한 74년 이후의 문예중흥5개년 계획에 의하면 국민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민족사화의 집성』이란 말로 집약된다. 이 계획은 ①국난을 극복한 사실을 중심으로 한 민족사화를 연간 30편씩 제작하고 ②새마을운동이나 경제개발의 성과를 기록한 것을 해마다 50편씩 그려 모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5개년 동안이면 1백50편의 사화와 2백50편의 개발기록화를 모으게 된다는 계산이 되며 78년이 끝나면 종전의 기록화들과 더불어 총5백여편의 기록화가 집대성되는 셈이다.
여기에 소요되는 제작비를 그림1폭당 1백만원으로 계산하면 모두 5억원. 이만한 돈이 불과 수년사이에 화단에 투입되는 것이라고 보면 이는 유례없이 엄청난 미술계지원이라 할만하다.
정부는 이들 기록화를 영구 보존할 계획이지만 제작된 성과로 보면 정부의 생각과 작품 내용과의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 동안 제작된 기록화 중에는 괜찮은 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태반이 억지그림이기 때문이다. 당초 민족기록화를 완성했을 때 『저걸 어떻게 전시하고 후세에 남기느냐』고 지적된 작품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 점은 새마을 운동이나 월남전의 기록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갖가지 비난이 일곤 했다.
이러한 문제의 첫 요인은 이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주관자의 맹목성에 있다. 현재 이 방대한 사업을 관장하고 있는 문공부 예술과에는 기록화를 다룰만한 사람이 없으며 그때그때 미술가로 구성된 소위원회의 조언에 따라 움직여 왔다. 그 결과 작가선정에는 재질 여부간에 소수인의 안배형식을 면치 못했으며 또 그 표현에 있어 아주 사실성만을 강요함으로써 제약을 받았다. 상징화한 표현이나 반추상을 일체 허용치 않아 개성을 잃고 나아가 감동을 잃을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둘째는 작가측의 불성실이다. 이들 기록화에 참여한 화가들의 대부분이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라고 변명한다. 즉 『순수자가로서는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없지만 우선 생활에 보태기 위해서』그린다는 것이다. 그 청탁을 거부한 작가는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오히려 인선에 못들어서 잡음에 부채질하는 실정이다. 그런가 하면 기록화를 맡은 화가들은『적당히 그리는 것』으로 통용돼 있다. 극장간판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다시 하청을 준 예가 있는가 하면 한두주간에 2폭 대작을 완성했노라 자랑하는 이도 있는 실정이다. 현장의 「스케치」보다는 사진복사가 많고 특히 고증에 유의하는 작가란 너무도 극소수이다.
세째는 이들 기록화의 사장이다. 맨먼저 제작된 민족기록화는 어느 창고에 있다는 소문뿐 다시는 불 수 없으며, 새마을운동 기록화는 주로 문공부 청사의 장식화가 되었고 월남전기록화는 군기관에 흩어졌다. 주관자가 본시 목표하는 영구보전 및 국민의식의 고취와는 상반되는 사후조치이다. 작품이야 어떠하든 작가도 국민도 『잠시의 일』로 망각해버려 서로가 아무런 반성과 자극을 받지 않게 돼 있다.
요는 장기계획과 방대한 예산으로 기획된 이런 기록화사업이 일시적인 PR행사로 그쳤다는데 보다 중요한 문젯점이 있다. 작가의 능력도 고려치 않고 맡기는 터에 웅장하게 꾸며라, 미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라는 등 지나친 욕심을 재촉해 강요하다 보니 간판그림만도 못한 기록화가 허다하게 쏟아져 나오는 결과가 된 것이다.
화가에 따라서는 풍경·인물·정물 등의 능력에 차이가 있다. 미 제5공군에서는 10여년 전에 미국의 저명한 삽화가협회에 위촉하여 전선「스케치」, 즉 기록화전을 연 일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순수화가보다도 오히려 생동감 있는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평판이 좋았다.
최근에는 더욱 기록화의 풍조는 엉뚱하게 국전에까지 침투해 그 분위기를 흐려놓았는데 앞으로 기록화의 가치와 예술지원의 다목적을 올바르게 유도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재검토가 요망된다는 여론이다. 따라서 현대미술관이 본연의 임무를 다해야할 것이라는데 미술계의 주장은 귀결되고 있다. <끝><이종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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