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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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유죄와 무죄, 그것은 분명히 하늘과 땅 차이다. 심판 받는 그 개인에게 있어서는 전운명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이 아닌 인간에 의하여 심판되고 있다. 유한한 지혜와 능력으로 심판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심판은 주로 사람의 증언에 따라 이루어진다. 극히 이기적인 동물의 제약 없는 진술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의 증언이 거짓일 경우 올바른 심판은 처음부터 뒤흔들리지 아니 할 수 없다. 증거법이 하나의 도움이 되겠으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유한한 능력의 인문이 이기적인 인문의 간교한 위증을 가려내기란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여기에 심판의 어려움이 있고 여기에 동법의 고민이 있다.
어느 한가지 사실에 대하여 어느 증인은 이를 분명히 보고 들었다고 증언하나 다른 증인은 전혀 그러한 사실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 수많은 민·형사사건에 있어서 거의 한결같은 현상이다. 기억은 의지의 심부름꾼이라고 하나 그렇다고 그와 같이 엉뚱하게 상치될 수 있을까.
물론 증인들은 만약 거짓말을 하면 위증의 벌을 받을 것을 경고 받고 있다. 그러나 그 경고는 커다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과 거짓증언의 문제는 결국 정신적인 종교적 신앙, 그리고 사회적 풍토와 결부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신이 없는, 신은 이미 죽었다는 현대에 있어서 신의 형벌에 대한 두려움은 이미 사라 진지 오래이고 가치관념이 희박한 현실에 있어서는 거짓말쯤 하는 것은 벌써 양심의 문제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이 생각하기 쉽다. 그리하여 거짓말은 재판에 있어서의 증언에 한하지 않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법의 제재가 없고 오직 신의와 도의에만 맡겨지고 있는 일반 사회생활에 있어서 거짓말이 더욱 판을 치고 있는 것은 다같이 체험하는 일이다.
약속을 어기는 것도 어느 의미에서는 거짓말의 하나의 형태이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사회생활의 기초이고 법의 기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은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관념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법도 하나의 공동의 약속이라고 할 때 이러한 현실적 상황에서 법의식이 땅에 떨어져 있음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어느 한사람의 말과 약속은 그 개인의 자기 목적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상대방과 사회에 그와 또 다른 생활의 기초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사회적 또는 경제적인 연쇄적 신용관계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그 한사람의 말이 거짓이 그의 약속이 지켜지지 아니할 경우 사회전체의 신용관계가 송두리째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한 장의 부도수표가 그후 수십장 혹은 수백장의 부도수표를 유발하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한가지의 사례이다.
절실한 말은 때때로 인간의 다른 가치와 마찰되는 경우가 있다. 어느 사람이 그와 불가분의 신분적 혹은 사회적인 의리관계에 있는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여야 할 것인가?
귀중한 두개의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정의를 그 명분으로 하는 법은 사사로운 의리에게 정의의 한 모습이라고 할 구실에 대하여 양보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고광우 서울지검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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