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간 섬유협정과 한국의 섬유수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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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직유류 무역에 관한 다국간 협상이 20일 매듭 지어져 새 규칙이 오는 1월1일부터 발효케 되었다. 전문 67조 및 부칙으로 된 이 섬유협정은 아직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고 있지 않으므로 그것이 직유류 무역에 미치게 될 영향이 어느 만큼 인가를 지금 구체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섬유류수출비중이 매우 큰 우리로서는 협정내용을 면밀히 검토해서 수출에 불시의 타격을 입는 일이 없도록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섬유류 중에서 면직물만이 장기협정대상이었으나 새 협정은 면직물은 물론 모직·합성까지 포괄하고 있으므로 이른바 후진국 일반의 주수출상품을 전면적으로 규제하겠다는 선진국의 끈질긴 집념이 실현된 것이다. 우리의 경우, 섬유류 수출이 전체 수출고의 40%수준을 점하고 있으며 수출증가율도 높았던 것이므로 이러한 전반적인 규제가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은 틀림없다.
또 새 협정과 기존수입제한 조치가 병용될 것이라는 점도 후진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소지를 남긴 것이다. 기존 제한규정은 향후 3년간 단계적으로 소멸되거나 새로운 협정에 의해서 대체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러한 모호한 병행적용으로 말미암아 선진출입국들은 유리한 협정운용의 여유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다국간 협정은 직접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쌍무협정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일반협정이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에는 수입국들이 일방적으로 수입규제를 하기가 어려운데 반해서 쌍무협정을 통해서 일반협정이 유물해지는 체계 하에서는 쌍무협정을 어떻게 맺느냐 하는데 따라서 사태가 달라진다.
즉 당사자간의 쌍무협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수출국은 수출 대상국과의 경제관계 여하에 따라서 차별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 가령 우리의 경우 미국과 일본에 주로 수출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일반협정보다는 대미·대일 쌍무협정을 어떻게 맺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쌍무협정은 그때그때의 협상력에 따라서 크게 좌우될 것이므로 후진국에는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여 쌍무협정 체결을 교섭하는 과정에서 규제기금·수량·대가율, 그리고 긴급수입제한의 조건 등이 분명히 결정되는 것이므로 이를 국별로 제대로 교섭하기는 매우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교섭과정에서 수세에 있는 수출국이 수입국 보다 불리한 조건을 받아야 하는 점을 충분히 예상하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국제협정은 일반적으로 분명히 규제되기보다 빠져나갈 수 있는 여백이 많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므로 9개국으로 구성되는 감시기구에 크게 기대할 것은 못된다. 오히려 일반협정에 내포된 급수입 제한 조항을 철저히 연구하여 쌍무협정 체결 교섭과정에서 이를 명료화시킴으로써 불칙의 손해를 예방하도록 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요컨대 새로 채택되는 섬유협정은 후진국에 더욱 불리한 조건들이 많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므로 직유 무역의 신장에 우리가 큰 기대를 걸어서는 아니 된다고 평가되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섬유경기가 적어도 수년은 갈 것이라는 전망 하에 시설확장을 서둘렀으나, 원자재 확보난에 추가해서 수출시장전망도 악화되고 있는 것이므로 추가시설은 엄격히 규제하는 한편 대미·대구 쌍무협정 체결을 특히 유리하게 맺어야 하겠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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