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여자 탁구 세계 제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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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73년의 「스포츠」계의 「빅·뉴스」로 국민들을 열광시켰던 것은 한국 여자 탁구의 세계 정상 정복이었다.
한국 「스포츠」 사상 「레슬러」·「마라톤」·「복싱」등의 개인 종목이 세계 정상에 오른 일은 있어도 대소를 막론하고 구기 종목서는 세계를 제패한다는 것이 하나의 열망과 꿈으로만 그쳐왔다.
이같이 민족의 염원이기도한 구기서의 세계 제패가 지난 4월 「유고」의 제32회 「사라예보」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여자부 단체전에서 이루어졌다.
구기 종목이라도 탁구는 동양인들의 체질에 맞고 특히 한국의 여자 탁구는 세계 무대에의 눈을 일찍이 떴던 터라 어느 종목보다 앞서 세계 정상에 오르리라는 전망은 가질 수 있었다.
과거의 역사를 보더라도 한국의 여자 탁구는 세계 강호인 일본·중공 등 동양 세에 끼여 괄목할만한 성과를 올려왔었다. 그 대표적인 것은 1959년의 제25회 「도르트문트」 (서독) 대회 때의 준우승과 1971년 제31회 일본 「나고야」대회 때의 3위. 이미 14년 전인 「도르트문트」 대회 때 세계 각국이 탁구에 열을 올리지 않는 이유도 있었지만 한국은 최경자·황율자·조경자·이정희 등이 분전, 준우승을 획득함으로써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세계 제패도 가능하다는 교훈을 받았다.
그러나 그후는 중공·일본 세에 눌리면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올리지 못하다가 71년의 「나고야」대회 때 모처럼의 기회를 얻었다.
이때 한국은 최정숙·이에리사·나인숙·정현숙·김인옥 등이 당시로서는 최고의 「테크닉」과 「컨디션」으로 싸웠지만 일본에 3-2로 분패하고 이 대회 때부터 세계 무대에 다시 나온 중공세에 눌러 3위로 자위하고 말았다.
한국은 이후 72년의 「스칸디나비아·오픈」 대회 때 이에리사가 세계 최강들을 물리치고 여자 개인 단식에서 처음 우승, 단체전의 우승 가능성도 점치게 했다. 이 가능성에 대한 집념은 곧 그해 겨울동안의 피나는 강화 훈련으로 이어져 과거와는 달리 임원은 헌신, 선수들은 순종의 미덕을 발휘했다. 「사라예보」 대회에 임해서 탁구계서는 순수한 민족의 염원이라는 점 이외에도 중공을 엎고 일본 등이 새로운 「아시아」 탁구 연합을 만들어 한국을 고립시키려 했기 때문에 정책적이며 발언권의 강화라는 점에서도 그 우승은 꼭 해야겠다고 별렀다.
이 대회에 중공과 같은 예선조에 끼였던 한국은 4월8일 정회영·호옥란·장립 등 세계 「톱·랭커」들이 도사린 중공을 이에리사·정현숙·박미라 등이 분전, 3-1로 이긴데 이어 9일의 결승 「리그」서 「헝가리」를 3-1, 같은 날 일본을 3-1로 이겨 역사적인 감격의 우승보를 고국에 알렸다.
대일전에도 한국은 이에리사·정현숙·박미라가 출전했는데 이들도 일본의 「요꼬다」 (횡전) 「오오세끼」 (대관)를 예상보다 가볍게 이김으로써 6년 동안 세계를 제패해오던 일본의 아성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 우승을 놓고 탁구계서는 이에리사 같은 천부적인 「올라운드」「플레이어」와 10년 동안 대표 「코치」를 역임하면서 세계 탁구의 추세와 각국 선수들의 기술을 완전히 분석, 파악했었던 천영우「코치」, 그리고 김창원 회장의 꾸준한 밑받침이 컸다고 말하고 있다.
어떻든 이 역사적인 우승으로 탁구는 국민교 등 저변층에서부터 「붐」이 일고 있으며 1억원 기금의 탁구 회관도 설립될 날이 멀지 않게 되었으니 큰 수확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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