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저항 정신>
전회에서 말한바와 같이 YMCA는 3·1운동에의 길을 먼저 닦아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비겁하게 피했다는 오해를 받게 됐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오해를 받게된 이면에는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즉 당시 YMCA란 지식인들의 집단이라서 시시비비가 많았기 때문이다. 워낙 민주 단체란 어떤 중요 결정을 할 때는 반드시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는 법이다. 따라서 YMCA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던 예수교인들의 저질성도 무시 못한다.
우스운 얘기 하나를 소개한다. 양평 땅에 예수 잘 믿는 노인 한 분이 살고 있었다. 그는 승동교 회의 「클라크」 (곽안련) 목사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는 선교사의 말이라면 마치 하느님의 말씀처럼 믿었다. 그의 아들 배진성은 목사 공부를 하다가 설날이 되어 고향에 돌아가 아버지에게 세배를 드렸다.
그러자 그 아버지는 깜짝 놀라면서 『이게 무슨 참담한 짓이냐? 네가 목사 공부를 한다더니 더 나빠졌구나』하면서 꺼려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선교사들은 항상 『하느님 외에는 무엇에든지 절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또 경북 영주 땅에 권성화란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효심이 극진하여 그 시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아침·저녁으로 신주 앞에 상식을 하고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 노씨는 대상이 되기도 전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그 아내가 신주 앞에서 절하는 것을 못하게 하고 조석 상식을 못하게 했다. 마음을 그녀의 양심으로서는 도저히 남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권씨는 완력으로 그것을 막았기 때문에 그녀는 양심의 가책을 참다못하여 자살로써 속죄를 했다.
이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자 큰 물의가 일어났다. 신문기자는 먼저 이상재 옹에게 달려가 그의 의견을 물어 보았다. 그때 이상재 옹은 종교상에도 조선혼을 물실하라! 미신이 아닌 이상 부모의 제사 지냄이 무엇이 그르냐!』라는 제목으로 담화를 발표했다. 이것은 그 당시 기성 교회에 대한 폭탄 선언이었다. 이것은 1926년9월1일자 신문에 났다.
이와 같이 이상재 옹의 생각은 폭이 넓고 차원이 높은데 반하여 일반 교계는 옹졸하고 저질성이 농후했다. 이런 저질성이 YMCA에도 작용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상재 옹은 목숨을 잃을까 무서워서 피했다든가, 무저항 정신을 천도교에서 나왔다는 등의 주장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많다. 1957년 월남 선생의 유해를 한산에서 양주 땅으로 천묘 할 때 변영로는 선생의 묘비에다가『그때 천도교주 의암 손병희 선생과 함께 모의를 거듭하실 때 다수인은 한결같이 살육을 주장하였으나 오직 선생이 남을 살육하느니보다 우리가 죽기로 항거하여 대의를 세움만 같지 못하다고 제의하시었다. 그리하여 무저항비폭력의 혁명 운동이 처음으로 전개되어…』라고 쓰자, 일부 천도교 관계자들은 크게 반발했다.
하나 무저항주의 문제에 대해서는 구구히 반증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만
두고. 다만 월남 선생이 비겁하게 피했다는 말에 대해서는 몇마디 밝혀두고자 한다. 우선 함태영씨와 이갑성씨는『그런 소리는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라고 단적으로 반박했으며, 이규갑씨는 격분한 어조로 「지도자가 다 잡혀가면 누구가 뒤처리를 하겠소! 제1진 2진 3진 이렇게 잡혀가면서 싸우다가 반드시 나중에는 일제와 단판 할 사람이 있어야 할게요! 그게 누구이겠소? 그래서 월남선생을 일부러 남겨 두었는데 자꾸만 선생은 비밀 장소에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선생님은 가만 계시라는 데 어쩌자구 이렇게 자꾸만 나으십니까? 라고 짜증을 낸 적도 있소』라고 말했던 것이다.
또 그 당시 월남선생의 앞집에 살며 청년회 직원이던 이명원씨 말에 의하면 ①매일같이 YMCA에나와 사시다시피 하던 월남 선생이 전혀 안나오시기에 신병이라도 났나 걱정했더니 알고 본즉 1918년11월께부터 그 댁에서 모의를 했다는 얘기②자기더러 천도교의 위창 선생 (자기 처가 쪽으로 친척)에게 가서 돈을 구해보라던 얘기 ③기독교 측에서는 선생을 3인 대표로 추대했으나 선생은 절대 반대하면서 손의암 선생은 천도교 교주로서 돈도 거기서 나오고 했으니 도리상 그분을 시켜야된다던 얘기 ④선생은 뒤처리를 하기 위하여 서명하지 않았으며 함태영씨는 상해로 가게 되었고 하난사 여사도 2월에 벌써 상해에 있는 요인들과 연락 차 가다가 도중에 만주에서 객사했다는 얘기 ⑤상해와도 사전 연락이 있었느냐하는 질문에 대하여 선생은 『비단 상해랴!』하면서 동경과 미국엔 연락이 있었고 「파리」 강화 회의에도 호소문을 보냈다는 얘기 등이었다.
그리고 3·1만세 직후 월남 선생도 구금되어 문초를 당했었다. 그때 같이 구금되어 문초를 당한 화백 김은호씨 말에 의하면 자기는 신석구와 한방에 있었고, 건너편 방에는 길선주 최남선 한용운 등이 차례로 있었는데, 월남 선생은 바로 자기 옆방에 있었다는 것이다.
김은호씨는 유치장에 있을 때 너무 얻어맞아 까무러치면 물을 끼얹어 소생시킨 다음 취조를 계속하곤 했는데, 월남선생은 『일본 사람들은 제 아비도 때린다더라! 어디 좀 때려봐라』했지만, 감히 선생만은 때리진 못하고 일인검사가『그대는 33인 명단에는 없지만 당신이 주모했지요?』하는 말에 선생은『대단히 고마운 말이요. 그 사람들은 내가 늙었다고 쏙 빼놔서 매우 섭섭했는데 경찰서가 나룰 그 속에 넣어주니 더 이상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소!』했다. 『만세를 불렀소?』묻는 말에 선생은 『부르다 뿐이요! 밤새도록 불렀지요』했다. 검사가 기가 막혀 『당신은 흑막이 있소』하니까, 선생은 『흑막? 나는 백막으로 했소』했다.
그후 검사는 별수 없이 선생을 석방하면서 『그대는 33인 이상의 중범 취급을 해야겠지만 천황폐하의 특사로 내놓아준다』하기에 선생은 드리어『대단히 섭섭하오! 경찰서에서도 나를 늙었다고 빼놓으니 늙은 사람은 감옥에서도 소용이 없구려!』했다는 얘기다. <계속>계속>무저항>
(922)<제자 전택부>|<제33화> 종로 YMCA의 항일 운동 (32)|전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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