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서두른 경주고분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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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주시내에서 금년 봄부터 발굴된 신라고분은 1백기에 달한다. 호화로운 유물로 최대의 관심사를 불러일으킨 155호분을 비롯하여 거개의 발굴고분은 도심지의 황남동에 있는 것들. 10기 경도가 그 밖의 지역에 산재하는 유적이다.
경주를 발칵 뒤집는 듯이 이 숱한 고분들을 왜 갑자기 파헤친 것일까. 그것은 곧 경주관광종합개발 10개년 계획의 일환사업이요, 좁혀 말하면 황남동의 미추왕릉지구에 마련하는 고분공원설치 작업 때문이다. 앞서 경주일원에서 도시계획상의 고분정리와 특히 고속도로를 내기 위한 정리가 있었지만 금년처럼 질·양면에서의 대규모 발굴은 일찍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사적40호의 황남동 고분군지대를 공원화 하겠다는 생각은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싹튼 것이요, 옛날부터 고분 사이를 비집고 민가가 가득 들어차 있어 미관상 지저분하다는데서 구상된 것이다. 더구나 평지에 그같이 큰 봉토의 고분이 밀집된 예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터이어서 관광거리로서도 호적한 대상으로 지목돼 경주관광개발사업의 주요 표적이 된게 사실이다.
이 공원구역 안의 기존 민가 1백85동은 이미 철거됐고, 주위 1천6백m의 담장 설치장소에 대한 지하유구조사도 완료돼 이제 담을 쌓고 구역 안에 잔디를 입히는 일이 남았다. 그리고 155호분과 내년에 드러낼 98호분의 내부공개 복원작업이 계속될 것이며 출토유물의 별도전시관 건립도 고려중이다.
그러나 이 고분공원은 당초의 착상에 대해서는 수긍이 가지만 일의 추진면에는 허점이 적잖은 계획이었다. 지하유구공개관람 고분의 예비발굴로 시행된 155호분이 천마도와 칠기 및 금관을 비롯한 귀금속 장신구 등 종래 보지 못하던 호화로운 유물이 쏟아져 나오자 문화재위원회의 어떤 분은 황남동에 있는 커다란 봉토분 18기를 전부 파봤으면 하는 의견이었다고 전한다.
또 발굴 당사자들은 당초 공개대상 고분이 최대 봉분의 98%호분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일을 마치기전에 새로운 작업을 서둘러 벌였다.
물론 155호에서 98에 잇단 발굴은 엄격한 의미에서 학술발굴이 아니요, 정책발굴이기 때문에 차근차근 검토할 여지가 없는지 모른다. 학계의 조심스런 재고 요청에 일일이 귀를 기울이다가는 정책수행에 차질을 가져올 우려마저 없지 않다.
하지만 발굴당사자들이 서둘러 추진하는 이유란 ①155호분만으로는 관람공간이 비좁겠고 ②이 고분군지역의 성격해명을 확연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지론으로는 이곳 18기 전부의 발굴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이 발굴보다 더 무계획한 사업추진은 계림로의 개설과 발굴이다. 경주시청 앞에서 첨성대 옆을 뚫는 계림로와 첨성로의 신설작업은 우선 「불도저」로 밀어낸 뒤 하수구를 파다가 유구가 노출된 까닭에 비로소 발굴을 착수한 것. 경주박물관이 계림로 공사장에서 판 고분 수가 무려 54기인데 3개월간에 뚝딱 해낸 것이다.
황남동 일대가 고분을 깔아뭉개고 들어앉은 마을이라는 것은 상식이고 나아가 경주에선 어떠한 공사에도 예비조사가 앞서야하는 실정으로 금년 김유신묘에 이르는 장군로 공사에서도 수기의 고분이 노출됐었다. 그런데 「불도저」공사부터 시작했다는 점에 우선 문제가 있는 것이다. 길에 고분이 걸리자 시공자는 울상이 돼버렸고, 박물관측에선 하는 수없이 소수인원을 동원해 약식발굴을 했는데 그것은 고물캐기식 발굴.
차형토기나 금제 감옥보검까지 출토된바있으므로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는 고분들인데 적은 예산에다 시공자측의 독촉에 밀려 너무도 손쉽게 처리해 버리는 결과가 됐다.
이런 선례의 불실을 거울삼아 가을에 실시한 공원외곽 담장공사에서는 설치장소에 대한 발굴을 미리 벌였고 경북인 영남대 부산대의 3개 대학박물관「팀」이 참가해 적석고분 및 옹관묘 등 20기를 정리했다.
이밖에도 여름에 있었던 미추왕릉지구 내·외곽의 폐고분정리는 몇 개 대학박물관이 참가했음에도 발굴고분수는 실상 얼마 되지 않는다. 단대가 인왕동에서 2기, 고대가 담장 안에서 3기, 이대가 인왕동과 황남동에서 각각 1기, 영남대가 철거택지에서 1기, 그리고 서울대가 금관이 나왔다고 알려진 교동에서 발굴했다.
금년 초 압수된 경주교동 출토의 금관은 서울대의 발굴을 통하여 도굴된 사실이 확연해졌다. 그럼에도 문화재관리국은 그 도굴자를 경주사적관리사무소에 임시고원으로 채용한 일이 있는가 하면, 도굴이 판명된 연후의 아무런 조치도 춰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
어쨌든 금년에 고고학 분야의 사람들은 경주의 이러한 발굴로 말미암아 고역을 치른 것이 사실이고 당국에서도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막아내기에 진땀을 뺐는데 그 성과야 어떠하든 이번을 거울로 삼아 문화재보존사업의 치밀한 계획과 신중한 추진을 다시 한번 반성해야 한다고 학계는 요청하고 있다. <이종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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