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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일본] 도쿄는 외국호텔 신축 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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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요즘 일본 도쿄(東京)에서는 '2007년 문제'라는 단어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컴퓨터 연도 인식 오류 문제나 물 부족 문제 같은 국제적 이슈를 연상시키지만 실은 호텔 과잉으로 인한 문제를 꼬집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도쿄에서는 1964년 도쿄 올림픽 이래 최대 규모의 호텔 신축 붐이 일고 있다.

향후 5년, 즉 2007년까지 특급호텔만 11개가 완공된다. 현재 도쿄의 특급 호텔의 방 수가 약 3만실인데 여기의 15%에 해당하는 4천5백개 가량이 새로 생겨나는 셈이다.

이중 네곳은 미국과 홍콩 등의 다국적 호텔 체인이다. 다음달 도쿄의 번화가인 롯폰기(六本木)에 문을 여는 그랜드하얏트 도쿄를 비롯, 니혼바시(日本橋)의 만다린오리엔탈 도쿄, 시오도메(汐留)의 세인트 레지스 도쿄 등은 내로라 하는 최고급 호텔 브랜드다.

이들 호텔의 숙박료는 싱글룸 기준으로 4만6천엔(약 46만원)~5만7천엔(약 57만원)에 달해 그동안 최고의 명성을 누려온 오쿠라.뉴오타니 등 토종 호텔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그렇다면 불경기에 허덕이고 있는 일본에서 왜 이런 호텔들의 신축 붐이 일고 있는 것일까.

만다린오리엔탈 도쿄의 한 관계자는 "지금 도쿄의 땅값이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화 전략의 일환으로 도쿄에 진출할 기회를 엿보던 차에 땅값이 폭락하니 안 뛰어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에 도쿄에 진출하는 외국계 체인 네 곳 중 세 곳은 일본에 처음으로 진출하는 곳들이다.

그랜드하얏트 도쿄의 홍보책임자인 가타오카 구미코(片岡久美子)는 "소득이 줄어든 일본인 고객보다 그동안 전세계에서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일본에 출장오는 외국인 사업가를 대거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동안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일본 내 기존 특급 호텔들에 비상이 걸렸다.

전체 고객의 56%가 외국인인 오쿠라 호텔은 최근 3년간 일정으로 80억엔 (약 8백억원)을 들여 개보수 공사에 나섰다.

시나가와 프린스호텔과 젠닛쿠(全日空)호텔은 그동안 특급 호텔에선 금기시되던 '단시간 대실(貸室)'을 하기 시작했다. 24시간 체크인이 가능하고 5~7시간의 단시간 체류를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일부 특급 호텔에서는 "고급 호텔의 이미지에 손상이 간다"며 꺼리던 편의점이나 음식점으로부터의 음식반입도 허용키로 했다. 사실상 룸서비스를 포기한 것이다.

또 신주쿠(新宿)지역 호텔들의 경우 "다른 지역에 손님을 뺏기지 말자"며 힐튼호텔 도쿄 등 인근 지역 호텔 다섯 곳의 총지배인들이 공동 자구책 모색에 나서는 등 '지역 경쟁'의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호텔들의 '도쿄 대혈전'은 결국 제살 깎아먹기로 끝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최근 도쿄도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현재 연간 2백77만명에서 5년 후에는 6백만명까지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시티그룹 등 상당수 외국계 자본들이 일본에서 발을 빼고 있는 마당에 이 같은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긴 힘들기 때문이다.

2007년 이들 호텔의 환한 불빛이 멋진 도쿄의 야경을 장식할 것인지, 아니면 도심의 빈 껍데기로 전락하고 말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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