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을 만난 일본인이 살아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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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동경=박동순 특파원】1884년말의 갑신정변에 실패, 일본에 망명한「김옥균」을 지금부터 80년 전인 1893년에 자기 마을에서 여덟살의 어린 나이로 만나고 당시의 일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일본인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도오꾜」에서 동북방으로 1백20㎞ 떨어진「미또」시 교외「오가와」라는 마을에 사는(생전에 김옥균을 직접 만난 최후의 생존자일지도 모르는) 이 일본인은 당년 88세(1886년생)의「야쓰몬지·야이찌」씨.
아직도 기력이 청정한「야쓰몬지」씨는 찾아간 기자에게『김옥균이라는 조선의 유명한 정치가가 망명해와서 마을에 꽤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김옥균이 처음으로 환등기라는 신기한 사진기를 자기에게 보여주었다』고 또박또박 당시의 일을 밝혔다.「야쓰몬지」에 따르면 ①김옥균은「이사까·나까오」라는 이 지방출신정객의 장례식 참석 차 마을에 왔으며 ②박영효가 동행했고 ③김옥균은 그후 꽤 오랫동안「야쓰몬지」가의 일가인「야쓰몬지·겐조」씨 집(건삼씨의 할아버지 대)에 머물렀다는 얘기다.
80년 전의, 그나마 여덟살 때 일이라 김옥균의 일상 언동을 자세히 알고 기억하지는 못했으나『김옥균이 극히 낯선 복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김옥균은 아마도 한복을 입고 있었던 것 같다.
「이사까·나까오」씨는 장래가 촉망되던 마을출신의 정객.
생전에 김옥균과는 친교가 두터웠으나 불행히도 40여세의 나이로 죽었으며, 그 묘가「야쓰몬지씨」의 외가에 가는 길목이어서 여러 차례 묘 옆을 지나쳤는데 30, 40년 전까지만 해도 김옥균이 비문을 썼다는 여덟치 각의 큰 목비가 서 있었고 지금 생각해도『비문의 문체가 특이하게 느껴졌다』고-.
「야쓰몬지」씨가 김옥균의 은거처라고 알려준「야쓰몬지·겐조」씨 댁은 지은지 3백년이 넘었으나 지금도 그대로의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으며, 김옥균이「야쓰몬지」씨에게 써줬다는 휘호가 있는 김옥균의「서」한 폭도「겐조」씨의 숙부 집에 보관돼 있었다.
「야쓰몬지」씨가 밝힌「이사까·나까오」씨는「미또」출신의 정객으로서 의협심이 강해 북해도에서 돌아온 김옥균의 처지를 동정,「도오꾜」유락정에 있는 자택에 머무르게 하고 이에 앞서 김옥균이「오가자와라」섬으로 쫓겨갔을 때는 김옥균의 글씨를 비싼 값으로 김옥균과 친분있는 사람들에게 팔아 돈을 마련해 보내기도 했음이 기록(『김옥균』=갈생현탁 편집·1916년에 발행된 김옥균과 친교가 있던 인사들의 회상문집)에서 확인됐다. (자세한 내용은 본지 연재「일본에 심은 한국」제9화「고균 김옥균의 유랑행답기」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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