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개각』이후|변화의 바람은 어디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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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종필 국무총리는 지난 4일 개각 후 처음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정부가 국민을 납득, 이해시키는 과정에 잘못이 있었음을 시인하면서『여러분의 주변생활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한 가운데 점차 서서히 개선돼 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 총리가 말한「조용한 변화」「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개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명확치 않으나「변화」를 시사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0년 밟으면 논도 굳어져>
한편 개각후의 첫 국무회의를 마치고 어느 장관은『논바닥도 10년을 밟고 다니면 굳어져서 당장 그 자리에 모를 심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해 그「변화」의 한계를 말하기도 했다. 10년 이상 집권해 온 현정부의 통치행태가 일부 장관이 바뀐다 해서 당장 무슨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성급하게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어떤 변화는 있을 것 같다. 이 변화가 어떤 형태인 것이며 어떤 한계를 가질 것인지에 대해 내외의 주목을 받으면서 분명히 변화의 바람은 불었다.

<각의도 정치적 차원으로>
12·3개각의 특징에 대해 외지는 일부각료의 정보부장의 퇴진과 김 총리의 유임으로 집약된다고 했다.
실상 개각을 계기로 정부는 부분적인 기능조정을 구상하면서 모든 행정을 내각중심으로 일원화하여 과거의「행정의 중복성」이나「기능의 대행현상」을 점차 정비해 나갈 방침인 듯 하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 행정부가부처에 파견돼 있던 정보부의 조정관이 철수하고 언론기관 출입도 중지한 일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정부의 내부기능조정은 상대적으로 내각의 기능확대 내지는 강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볼티모·선」지는 최근 한국의 개각논평에서 내무부의 기능이 강화되고 통일원이 남북대화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했다.
외국신문들의 이러한 전망이 얼마나 적중할 것인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각의 기능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다.
71년6월 김 총리가 취임한 이래 국무회의의 성격이 차차 달라져 왔다는 얘기가 있다.
종전의 경우 국무회의는 차관회의의 거의 연속이었고 각부장관은 소관부처사항이외에는 거의 발언하는 것을 삼갔다.
김 총리 취임 이후 이러한 분위기가 조금씩 가시기 시작해 장관은 국무위원의 입장에서 타 부처소관사항에 대해서도 자기 의견을 발표하기도하고 간담회형식의 모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얼마 전 김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상정안건을 모두 처리한 뒤『혹시 구두안건은 없느냐』고 물었다. 「구두안건」이란 사무적 차원이 아닌「국정얘기」라고 해석된다.
12·3개각은 이런 내각의 변화에 박차를 가할 것 같다. 말하자면 사무적 차원에서 정치적 차원으로.

<「유보 있는 변화」일지도>
변화가 요청됐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봐야 할까. 손쉽게는 그 동안 학생·종교인·지식인들이 내걸었던 구호나 결의문의 대목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있고, 혹은 체제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변화의 배경과 여건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그 변화의 성격이나 한계가 규정된다.
변화의 징후가 있을 때 여당 측에서는 뒤늦게 그 나름의 진단을 했다.
지난 5일 열린 공화당 의원총회에서『행정부가 여론을 외면하고 민의를 차단해 왔다』는 의견이 나왔으며 유정회 의원총회에서도「대화의 확대」「지도층의 각성」이 거론됐다.
또 정부는 정부대로「민의」라는 것의 파악에 새 태세를 갖추려는 것 같다.
김 총리는 신문과 방송을 더 많이 읽고 듣겠다고 했으며 경제계·교육계·종교계 등 각계사람들과 자주 만나 당면문제를 논의하겠다고 해 이미 바쁜 접촉에 나섰다.
또 여야체제가 조만간 이루어질 것 같다.
「타이트」한「컨트롤」이 일단 통풍을 맞이한 셈이다. 「집회·시위에 관한 법」「학칙」의 최대한 적용으로 다스려진 학생이 모두 석방되고 백지화된 것도 이중 큰「통풍」이다.
변화의 바람-. 그러나 원인과 경과가 어떠하든간에 변화에는 한계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번 개각후의 변화에 대해서 어느 야당의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뭔가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바뀌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바뀌지 않고 있는 것도 잘 알아야 한다. 쉽게 예를 들어 예산통과직후의 물가인상조치는 국민과 국회에 대한 정부의 성실성에관한 문제이며 물가인상을 보면 그것을 더욱 실감한다.』
논리의 출발은 조금 다르지만 변화의 사정을 설명한 어느 고위인사는『우리가 비상사태 하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정부는 줄곧 자유와 민주주의의 한국적 여건을 말해 왔다.
그렇다면 이런 한계를 벗어나는 변화는 용인될 수 없으이 명백하며 어쩌면「타이트」한「컨트롤」이 예탁된 변화일지도 모른다. <고흥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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