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진 판사실의 문턱|소송당사자 등의 출입잦아|"민원창구 같이 북적대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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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직판사 R씨는 그의 수상집에「판사실과 동사무소」라는 글을 쓴일이 있다.
재직당시 놀러왔던 한 친구가 판사실에 들어와보고 놀란듯이 말했다..

<"알아서 처리"도>
『고등관이 계신 판사실이라 무상 출입할 수 없는 곳인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복작대는게 동사무실 보다 더 하다』고.
3명의 판사가 함께 쓰고있는 한 방에 법원직원·변호사·소송관계자, 그리고 일반 손님에 사환까지, 어쩌다가 말소리라도 높아지면 증권시장 같다는 것이 오늘의 판사실 모습.
흔히들 요즘의 판사실 문턱이 낮아졌다고 한다.
50여년간 법조인 생활을 해온 C씨는 예전에는 변호사가 판사실을 드나드는 것은 출장에 관한 의논이나 특별기일을 정해 법정이 판사실로 정해지는 경우, 그것도 재판부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 한 했었는데 이즈음엔 마치 민원부서의 사무실같은 사람의 왕래를 볼 수 있다고 개탄한 일이 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재판의 독립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들이 드나드는 것을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금년 봄 어느 방송국기자가 필화사건으로 구속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영장을 발부한 판사가 그 구속영장을 신청한 검사에게 쪽지로 영장을 발부한 사실을 알려줬다는 소문이 났었다.
그것이 단순한 소문이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나 법관들 사이에 한동안 화제가 됐었고, 심지어 검찰측에서 조차 그같은 배려(?)에 겸연쩍게 당혹을 보였었다.
법률적인 문제를『알아서 처리』함으로써 스스로 판사실의 문턱을 낮추었다는 알 듯 모를 듯 한 말이 나돌기도 했었다.
(C기자의 수첩에서)

<조심스런 출입 옛일>
○…무풍(無風) 지대로 통했던 사법부에 이같은 풍조가 밀려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유신이후 개정된 법원조직법에 따라 재임명 과정에서 9명의 대법원 판사와 44명의 일반법관이 제의되어 떼지어 옷을 벗었고, 대통령이 법관의 보직권을 갖는 등 일련의 사법관계법이 개경된 때부터.
게다가 징계처분으로 파멸이 가능하게 됐고 각급 법원회의는「기강 확립」「쇄신」을 앞세워 엄포에 엄포를 거듭하고…
○…2년반 전 이른바 꽃값(花代)시비로 발단된 사법파동 때 까지만 해도 검찰의 법원출입은 지밀했었다.
주변의 눈치를 살펴가며 조심스례 행해졌었다.
더욱이나「비 법조인」의 판사실 왕래는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S기자의 수첩에서)
봇물이 터지 듯 한껏 판사실 문턱을 낮춘 것은 앞서 말한바와 같은 법관의 신변을 제한하는 관계법의 개정 이후라는 것은 법조인이면 누구나 의견을 같이한다.
○…몇달전 어느 종교인의 법률위반사건 때, 또 어느 고급공무원의 독직사건 때 당초 그사건을 취급했던 수사기관 사람들이 법원에 번번히 드나들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일.
막상 판결 때 검찰의 공소사실을 대체로 시인하면서도 구형량에 비해 의외로 낮은 형량이 선고되자 의아해했고 더욱 실형이 선고 된 직후 보석으로 석방될 때 검찰이나 법원은 모두 의미있는 웃음을 보였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결과라고 인심좋은 사람들이 떠들었다.

<담당교체도 빈번>
○…그러나 요즘 젊은 법관들은 법 운용에 있어서 가장 큰 우려는 법률 외적인 요인에 못지않게 법원 스스로가 품고 있는 내부의 비 자주성 때문이라는 것.
작년까지만 해도 특정사건을 청탁하는 경우 검찰이 지연이나 학벌 등 연고를 찾아 부탁 또는 애원까지 했다는데 이제는 법윈 스스로가 지나치게「알아서」처리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
반 사회 기업인으로 기소된 어떤 실업인의 경우 어쩐일 인지 당초 정해졌던 재판부가 아무 이유엾이 바뀌고 또 며칠 뒤 다시 바뀌어 담당 변호사가 크게 놀랐다는 이야기도 법원주변에 허다하다.
(J기자 수첩에서)
○…현실긍정과 법관의 진실된 자세, 이 틈바구니에서 법관은 고민하게 마련이라고 어느재야법조인이 말했다.
그는 지난 60년 4월26일 당시 대법원이 이 대통령의 하야성명이 나온지 불과 몇 시간만에 「경향신문」에 대한 공보실장의「발행허가정지 처분 집행정지」결정을 내렸던 사실을 되살렸다.
자유당 말기 온 국민이 그렇게도 속결을 갈망했으나 외면 하더니 한 정권의 붕괴를 확인한 뒤야 늦 부지런을 피운 것이었다.
어느 누구로 부터도 핀잔을 받은 사법부의 오점이었다.
그것이 사법부의 뼈아픈 상처였다면 52년 6월 미국의 최고재판소가「트루먼」대통령의 저 유명한 「철강업 접수조치」를 위헌이라고 과감히 판정한 것과 가까이는 요즘의「워터게이트」사건에서 외국의 법관들이 보여준 불굴의 자세는 비록 외국의 것이기는 하지만 곧잘 이상적인 것으로 인용이 된다.
그러기에 지나친 현실긍정, 기정사실에 치우친 나머지 허탈해 있는 자신들의 자세, 그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바로 그것이 판사실 문턱을 낮추는 것이라고.
정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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