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립대학운동>
일제가 조선 민족의 반항이 무서워 마지못해 만든 복지정책이 두개가 있었는데 그 하나는교육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농촌사회와 경제에 관한 것이었다.
즉「사이또」(제등보) 총독은 그 재임시 경성제국 대학을 설립했는데 이것은 조선민족의 민립대학운동이 성공리에 진전되니까 이를 방해하기 위하여 설립한 것이며「우가끼」(우원일성) 총독은 농어촌의 진흥과 자력갱생운동을 잘 했는데 이것은 YMCA의 농촌사업이 성공되어 발전하니까 이를 방해하기 위하여 만든 일시적인 정책이었다.
민립대학 운동이란 1923년 3월29일 YMCA 강당에서 이상재 이승훈 유진태 유성준 등 4백60명의 발기인이 모여 조선 민립대학교 기성회를 조직하고 이상재를 그 회장으로 선출했다.
이것은 1천만원을 모금하여 우리 손으로 우리대학을 만들어보자는 운동이었다.
전국 주요도시에 지부가 생기고 각처에서 성금이 쏨아져 들어왔다.
선교사들도 이에 호응하여 미국에 가서 모금해 주었다.
이것은 전국민의 애국운동으로 번져갔다.
그러니까 일제는 당황해서 경성제국 대학을 설립한 것이다.
그러나 그네들은 조선인에게도 입학을 허가한다고 선전을 했다.
그러나 이 대학은 조선민족을 위해서 만든것이 아니라 우리의 민립대학을 방해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민립대학 운동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것과 관련해서 우스은 얘기가 하나 있다.
즉 이 대학은 1924년부터 예과를 설립하여 개교식 청첩장이 YMCA에 왔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거기 참석하기 위하여 의관을 갖춘 다음 여러직원을 들러보면서『오늘은 우리 민립대학의 개교식 날이니 모두들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자 모두 어리둥절하여「그게 무슨 말씀입니까』반문했다.
월남 선생은 껄껄 웃으면서『저놈들의 관립 경성제국대학은 곧 우리 민립대학의 후신인 중 모르는가? 그리고 경성제국대학은 장차 우리대학이 될거야』라고 말했던 것이다.
정말 이 대학은 이의 말대로 우리의 서울대학이 되었고, 그 당시 모은 돈은 그후 고려대학에 큰 보탬이 되었던 젓이다.
다음은 YMCA의 농촌운동이다.
이 운동은 1923년 겨울부터 신흥우 등 Y간부들이 현지를 답사하여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926년에「컬럼비아」대학 사회학 교수「브루너」를 초치하여 우리의 사회학자 하경덕 (한때 서울신문 사장도 지냈음) 과 같이 농촌조사를 시켰다.
하경덕은 1년간 채용이되어 국내의 저명한 학자들과 같이 본격적인 조사를 했다.
이것이 즉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이만갑 교수의 말대로『한국농촌에 대한 최초의 사회학적 연구의 시도』이었디.
그당시 한국농촌의 피폐상이란 형언하기 어러웠다.
『일제의 식민정책을 아무리 아름답게 장식하든지….
조선인은 정히 아 귀굴로 화하였다.
조선인의 연평균 생산액이 5원75전으로 매월 48전이라하니, 인도인보다 더 비참하다…』 「민중은 공포에 떨고, 전농민의 4분의 3이상되는 소작인들은 비싼 이잣돈을 얻어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해마다 총 생산고의 30%내지 48%에 해당한 이자를 고리대금 업자에게 치러아 한다』『농민들은 거의 다 자포자기하여 있다.
저희같은 촌놈들이 뭐 압니까? 흙이나 파고 살다가 죽으면 되지요 한다.
이것이 나라독립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나」라는 가치틀 일깨워 주어야 한다.
「나」도 하나의 사람이다.
「나」도 다른사람과 같이 눈이 둘있고, 귀가 둘있고, 팔다리가 갖추어져 있다.
「나」만 아니라「너」도 있다.
「나」와「너」의 힘이 뭉칠 때에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조사과정과 방향설정에 확신을 가진 다음에는 정책 수립단계로 들어갔다.
신흥우 총무는 그 당시 동역자이던「프락만」과 함께 도미하여 YMCA 국제위원회의 총무「마트」등과 5인 위원회를 열고 다음과 같은 합의에 도달했다.
즉 첫째로 전국에다 10개지역을 선정하여 YMCA 국제본부는 미국과「캐나다」에서 전문가를 파송한다.
둘째로 전문가는 l925년부터 1년에 2명씩 5년간에 10명까지 파송한다.
세째로 전문가들은 전부 농촌문제 전문가라야 한다.
네째로 조선 YMCA연합회는 이 10명의 외국인 전문가와 같이 일할 수 있는 한국인 간사 10명읕 얻어야 된다.
다섯째로 각 지역에 회의도 할 수 있고 교육도 할 수 있는 시설을 구비해야하며 농사의 개량과 증산을 시범할 수 있는 최소한도의 시범 농토를 마련해야 한다.
이와같은 합의에 성공하고 돌아온 신흥우 등은 서울에서 국제「세미나」를 열었다.
즉 1926년 4월5일부터 9일까지 5일간 한국 YMCA의 농촌사업을 연구 촉진하기 위하여 윤치호 이상재 신흥우 구자옥 홍경선「프락만」「반하트」등 13명의 간부지도자들이 모였다.
한국인과 외국인 수는 거의 반반이었다.
여기서 그들은 농촌사업의 필요성·그 목적·재정조달·출판물 조달·실무자 훈련 등 구체적인 경책을 수립했다.
그리고 이미 채택했던『우리는 모든 농민들의 경제적 향상과 사회적 단결과 정신적 소생을 도모한다』라는·3대 강령을 재 확인하고 사업을 구체적으르 추진했다. <계속>계속>민립대학운동>
천만원모금 목표세워 대학설립운동|미 교수초청 하경덕과 함께 농촌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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