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서정쇄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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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개각전야의 내외정세는 한 마디로 말해서 국가의 운명이나 정부의 장래가 다같이 어두운 위기적 상황이었다.
이 위기의 내용은 새로운 평화질서를 모색하고 있는 세계의 흐름에 따라 과거의 대북한 정책·대 공산권 정책·대UN정책을 재조정해야 할 난제의 산적, 김대중씨 사건으로 야기된 우방들과의 외교적인 문제, 동 사건이 국내정국에 투영됨으로써 빚어진 정치적·사회적 인물의, 유류파동의 충격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경제계의 곤경, 그리고 최근에는 학원·언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 등이 한꺼번에 겹쳐 실로 다원적이요, 중루적인 성격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앙정보부장을 포함한 이번의 내각 개편은 바로 이같은 시국의 도전에 대한 정부의 대응조치로서 우선 평가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번 내각 개편에 즈음해서 김 국무총리가『최근 국내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통감한다』고 전제하고『총리이하 전 각료는 정부가 국민을 위해 있다는 기본적인 자세를 가지고 시정을 펴 나갈 것』이라고 한 말에 특별한 무게를 느낀다.
이 말은 오랫동안 책임정치의 구현을 바라 마지않던 많은 국민의 귀에 마치 잃어버렸던 어휘를 듣는 것과 같은 감조차 느끼게 한다.
우리는 이로써 정부와 국민 사이에 새로운 대화의 가능성이 열려질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국민은 정부가 허심탄회하게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난국 극복을 위해 뭉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기를 절실하게 바라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그것을 퇴치해 줄 것을 바라고 있는 첫째 것은 다름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 팽배하게 미만해 있는 불신풍조이다.
학생이 교사를 못 믿고, 독자가 신문을 못 믿고, 국민이 정부를 못 믿는 풍토에서 국민의 협조를 기대한다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새로 발족한 내각에 대해서 당부하고 싶은 가장 긴요한 소망은 바로 민과 관, 그리고 국민상호간에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주력해 달라는 것이다.
협조를 이룩하는 또 하나의 길은 균형되면 뭉치고 불균형 되면 갈라진다는 평범한 진리이다.
물론 제한된 자원으로 힘든 공업화를 추진하고 있는 현 단계에서 모든 소득의 균형된 분배를 바란다는 것이 무리라는 것은 대다수 국민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땀흘려 일을 하고서도 최저생활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터에 다른 한쪽에선 부정과 부패로써 치부를 하고 분수에 없는 사치와 향락을 누리고 있다면 그것이 결과하는 것이 무엇이냐 함은 너무나 분명하다.
모든 국민이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응분의 삶이 보장되고, 모든 국민이 법에 정해진 대로의 인권을 보장받고, 적어도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위신을 지킬 수 있도록 철저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만이 국민협조를 얻는 길이라 우리는 본다.
새 내각에 우리는 특히 이 점을 강조하면서 진정한 서정쇄신이 있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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