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도 옛 명성 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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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 드는데/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가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에 나오는 삼학도(三鶴島)는 유달산과 함께 전남 목포를 상징한다.

하지만 목포시 내 도로표지판들에 표기된 '삼학도'를 따라 가 보면 섬은 온데간데 없고 황량한 모습뿐이다. 여기저기 버려진 폐 건설장비와 모래.원목 더미들,위압적인 공장 사일로와 굴뚝,을씨년스런 분위기의 관공서 청사 등등.

이처럼 뭍으로 변해 황폐화한 삼학도를 섬으로 되돌리고 일대를 해양유원지로 만드는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사라진 삼학도=목포 앞 바다에 있던 3개의 섬으로 유달산에서 수도하는 총각을 짝사랑하던 세 처녀가 타고 가던 배가 가라앉아 죽으면서 학이 되어 날아 오른 자리에 섬이 솟았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섬의 면적이 10만4천여㎡, 중간 게 4만1천여㎡, 제일 작은 섬이 3천6백여㎡.

1897년 목포항 개항 후 사람들이 들어가 살고 뭍 사람들도 소풍.낚시터로 애용했다.

하지만 1960년을 전후해 세 섬 외곽에 둑을 쌓고 그 안 바다를 매립하면서 육지로 변했다. 섬의 산들은 매립용 토사 확보를 위해 깎이고 달동네로 바뀌었는가 하면 매립지에는 항만시설.공장.관공서 등이 마구 들어서면서 경관이 심하게 망가졌다.

80년대 들어 복원하자는 여론이 일면서 89년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목포시가 56만9천㎡를 공원으로 지정하고, 1천2백43억원을 들여 각종 시설들을 다른 곳으로 이전해 세 섬을 옛 모습과 가깝게 재현하기로 한 것이다.

복원 추진 현황=중(中) 삼학도 옆 한국냉장은 요즘 설비들을 떼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시가 보상을 마쳐 곧 철거에 나서기 때문이다.

다른 지장물 보상.철거 작업도 꽤 진척됐다. 사업지구에는 모두 3백86채의 건물이 있었으나 산자락의 불량 주택을 비롯해 3백여채를 이미 철거했다.

강문규(59)목포시 도시과장은 "한국제분도 보상에 참고하기 위해 곧 감정평가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관공서 이전도 착착 진행돼 해양수산청이 6월 하당 신도심으로 이사간다. 해양경찰서는 새 청사를 북항 지구에 내년 10월 입주 목표로 짓고 있다. 세관도 옮겨 갈 곳을 찾고 있다.

목포시 삼학도복원사업 담당 공영만(37)씨는 "섬 자리 주변을 우선 매입하고 있으며, 전체 보상비 6백46억원 중 2백50억여원이 집행됐다"고 말했다.

사업 부지 중 22%를 차지하는 사유지(12만6천여㎡) 중 절반 가량도 보상 절차를 밟고 있다.

공원 조성 계획=오는 5월 공사를 발주, 산들의 원형을 회복하는 일부터 한다. 깎인 곳을 성토(盛土)하고 나무들을 심는다. 대(大) 삼학도에는 전망대를, 중 삼학도에는 누각을 세운다. 또 산들 주위에 폭 20~40m,총 길이 2.2㎞의 수로를 파 바닷물을 끌여들여 섬의 형태를 재현한다.

그리고 주변에 정원(庭園)전시장, 목포 이야기 전시장, 시대촌(時代村) 성격의 즈믄 장터, 어린이 동산, 피크닉장 등을 꾸민다.

특히 현 해양수산청 민원실(3백38㎡)을 보수해 '대중가요 기념관'을 만들어 이난영.남진.조미미.이수미 등 지역 출신 가수들의 소장품.음반.의상 등을 전시하기로 했다.

또 한국냉장 자리에서 내항 쪽을 돌아 해양수산청 자리까지 1.1㎞에 경전철을 놓아 관광열차 역할을 하도록 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오는 7월 착공해 내년 말 완공할 이 전철은 지상 3m 이상 공중에 레일을 깔고, 고무 바퀴를 장착한 열차(70명 탑승)를 운행시켜 소음.진동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목포시는 1단계 섬 복원 및 수로.주변시설 조성 등을 2006년 말까지 마치기로 했다. 이어 친수(親水)공간 조성에 들어가 해변광장.해수풀장.해양주제시설.유람선 선착장.다목적 운동장 등을 2011년까지 완공,복원사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김종렬(42)'푸른 삼학도 환경 보전회'회장은 "삼학도 복원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돼도 20년 이상 걸리는 셈"이라며 "한번 망가뜨린 자연을 원상 회복하자면 얼마나 힘든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고 말했다.

목포=이해석 기자
사진=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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