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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인과 관계의 입증 책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법원민사2부는 27일 공해 소송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입증 책임에 관한 종전의 판결을 뒤엎고 공해 소송에 있어서도 일반적인 불법행위와 같이 피해자측에 충분한 입증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였다.
지난 5월23일에는 같은 대법원의 다른 판사가 『기업이 경제발전에 기여할지라도 유해「개스」의 분출은 적법한 것이 못되며 인과 관계 입증은 개연성만으로 충분하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유지한바 있다.
공해 소송의 인과 관계론의 변경은 마땅히 민법 제7백50조의 해석 적용에 관한 의견 변경이라고 보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4인의 심판부에서 변경한 것은 심히 부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민법은 불법행위에 관한 일반 원칙인 제7백50조 이외에도 제7백58조를 두어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도 배상을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공해 사건과 같은 손해 배상 소송에서 손해 발생의 인과관계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일본의 하급심 판결에서도 『인과관계의 존재가 입증되기 위하여서는 엄밀한 과학적 입증은 필요없으며 그 개연성의 입증만 있으면 족하다』는 방향으로 변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점에서 72년 9월 8일자 본 난도 개연성만 있으면 족하다는 앞서의 고법 판결을 타당한 것으로 논평하였었다.
현실 문제로 공해 사건의 인과관계 입증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공해의 발생 원인 기업측에서는 인과관계의 증명에 있어 원고측에 석명 요구 또는 감정 신청을 하여 과학적 증거를 요구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가난한 서민인 피해자로서는 이러한 과학적 증거를 수집하기에는 지나치게 무력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감정에 의한 엄밀한 과학적 입증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그 부담을 다할 수 없는 피해자는 일단 제기한 소송을 취하하거나 화해에 의한 해결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따라서 인과관계의 입증은 과학적 입증이 필요없으며 그 개연성의 입증만 있으면 족하다고 하는 것이 외국 판례들의 공통적 논지가 되고 있으며, 학자들도 이런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짐작컨대, 대법원민사2부의 의도는 인과관계의 입증 책임을 원고에게 전가하고 원고가 충분한 입증을 할 수 있는가 고법에서 사실 심리를 다시 하도록 하려는 것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판결의 의도가 여기에 있지 아니하고 만일 엄격한 과학적 입증 책임을 원고에게 지운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공해 판결의 큰 후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 건과 같이 단일 가해자의 경우, 인과관계의 개연성의 입증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나 엄밀한 과학적 입증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판시가 『공해 사건에 있어서의 입증에 관한 특별 취급에 관한 본 전제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이라면 이는 기업측을 두둔하고 피해자에 대하여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을 우려조차 없지 않다.
이론과 실무에 밝은 최고의 법조인인 대법원판사들이 공해 소송의 인과 관계론에서 일반론으로 후퇴한 것은 앞으로 속출할지도 모를 공해 소송을 예방하고, 공업 입국을 서두르고자 하는 정부 시책을 감안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론은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강자측의 부당한 행위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하여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점에서 우리는 다시 고법의 판결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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