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의 딸 - 백야의 손녀, LA서 뜻깊은 만남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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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장군의 손녀인 김을동 의원이 11일 노스리지에서 안창호 선생의 딸 안수산 여사를 만났다. 김 의원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안 여사의 손을 꼭 잡고 100세 생신을 축하하며 덕담을 나누고 있다. 백종춘 기자

독립운동 선열의 후예가 LA에서 뜻 깊은 만남을 가졌다.

도산 안창호의 장녀 안수산 여사와 백야 김좌진 장군의 손녀 김을동 의원이 11일 LA 북부 노스리지의 안 여사 자택에서 처음 만나, 손을 잡고 깊은 포옹을 했다.

김을동 의원이 "안 여사님, 제가 청산리 전투를 이끈 김좌진 장군의 손녀예요"라며 인사를 전하자, 안 여사는 "오~, 오~, 정말인가"라며 놀라움과 반가움을 표했다. 오는 16일이면 한국 나이로 100세를 맞는 안 여사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지만 그들의 포옹은 뜨겁고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한 세기를 거슬러 일본으로부터 대한의 독립을 위해 동지애로 뭉쳤던 도산과 백야의 모습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듯했다.

도산과 백야는 1909년 민족계몽과 지도자 육성을 위한 '청년학우회'를 결성했고, 1919년(2월 1일)엔 3.1운동을 촉발시킨 무오독립선언서에 39명의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올리며 뜻을 같이 했다.

이날 만남은 김 의원이 샌프란시스코 일정을 마치고 6시간 차를 몰아 오면서 갑작스럽게 성사됐다. 김 의원은 지난 8일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미주본부 발족을 위해 LA를 방문했다. 당초 김 의원은 곧바로 안 여사를 만날 계획이었지만 일정이 틀어졌고, 이날 다시 만남이 주선된 것. '안 여사를 꼭 만나야 한다'는 김 의원의 재촉에 샌프란시스코 일정에 동행했던 기념사업회 미주본부 임원들은 400마일 가까운 거리를 쉼 없이 차를 몰아 왔다고 전했다.

안 여사 집에 도착한 김 의원은 거실로 들어서면서 안 여사에게 큰절부터 올렸다. 안 여사가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김 의원은 "여사님 한국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큰절로 인사를 해요"라고 말한 뒤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머리를 숙였다. 김 의원은 준비한 꽃다발과 인삼제품을 건네며 "건강해 보이니 기분이 좋네요. 여사님, 더욱 건강하셔야 해요"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조부인 김좌진 장군은 무오독립선언 당시 안창호 선생과 함께 선언서에 서명을 했고 이승만 박사 등도 함께 했다고 말하고, 일행 중 한 명이 안 여사에게 영어로 통역해주자, 안 여사는 훨씬 이해가 빠른 듯 "아버지와 함께 그런 거냐, 아~ 그러냐"라며 감격해 했다. 김 의원은 중국의 김좌진 장군 순국지에 기념관을 세워 동료 의원들을 모시고 참배를 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며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110살 생신잔치 꼭 하세요" 김 의원 덕담

김 의원은 "여사님이 미국에서 늘 후배에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생신 축하하고, 남북이 통일되는 모습도 보실 수 있도록 건강했으며 좋겠어요. 110살 잔치도 해야 해요"라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1915년 1월 16일 LA에서 태어난 안 여사는 김 의원이 하는 우리말을 알아듣는 듯 했지만 영어 통역이 가해지면 이해가 훨씬 빠른 듯 '오~, 오~' 혹은 '그런가' '고맙다' 등으로 빠르게 반응했다. 안 여사는 캘스테이스트 샌디에이고를 졸업한 뒤 미 해군에 입대해 2차 대전 당시 해군 정보장교로 근무하며 일본군의 암호를 풀어 전세가 유리하게 진행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부친 안창호 선생과 함께 일본의 야욕을 분쇄하는 데 힘을 보탠 셈이다. 국가안보국(NSA) 연구원장으로도 활동한 안 여사는 지난 2003년 캘리포니아주로부터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했고, 이민 100주년을 빛낸 5대 영웅으로도 추앙됐다. 미주 한인이민역사 그 자체인 안 여사를 위해 한인사회는 오는 18일 흥사단 건물이 있던 맞은편의 웨스틴 보나벤처 호텔에서 백수연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김 의원이 다시 한 번 머리숙여 건강을 기원하며 물러나자 안 여사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동안 잡았던 손을 놓지 못했고 이내 "반가워~. 이렇게 나라를 위해 일을 하니"라며 격려했다.

20분 정도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김 의원이 거실을 나서자, 이날 자리에 함께 있던 안 여사의 아들 필립 안씨가 뒤쫓아 나오며 김 의원에게 책을 한 권 전했다. 안씨는 "미안해요, 준비를 하고도 잊었네요"라며 '버드나무 그늘'이라는 2003년 안 여사가 쓴 자서전을 건넸다. 책을 받아 든 김 의원은 간단히 책장 넘겨 본 후 "제가 더 열심히 할게요. 독립열사의 뜻이 후세에도 전해져 함께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김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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