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칠봉이 "착한 야구하러 다시 왔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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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006년 은퇴 후 야구계를 떠났던 ‘풍운아’ 임선동이 모교인 연세대 코치로 돌아왔다. 선수 시절 키 1m87㎝에 체중이 100㎏을 넘었던 임선동은 코치들로부터 늘 “체중 관리를 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운동을 그만둔 후에는 몸무게가 훨씬 더 늘어났다. [김진경 기자]

“칠봉이요? 임선동이죠. 고교 시절 실력을 따지면 조성민(작고)·박찬호(은퇴) 등 동기들 중 선동이가 최고였어요. 실력이 출중하면서도 예의 바른 선수였죠.”

 연세대 야구부 조성현(43) 감독이 임선동(41)을 두고 한 말이다. 얼마 전 끝난 화제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나온 ‘칠봉이’는 임선동을 모티브로 한 인물임이 알려지면서 그가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연말 조 감독이 연세대에 부임하면서 2년 후배 임선동을 투수코치로 영입했다. 2006년 은퇴 후 야구계에서 자취를 감췄던 임선동이 세상의 부름에 응답한 것이다.

 지난 6일 연세대 대운동장에서 만난 임선동은 현대 유니콘스 시절 재킷을 입고 있었다. 조 감독은 “선동이가 살이 많이 찐 탓에 외부와 접촉을 꺼려 왔다”고 전했다. 선수 때도 체격이 좋았지만 지금은 한눈에 봐도 몸집이 더 커져 있었다. 그는 조 감독과 선수들 사이를 오가며 열심히 코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드라마 속 칠봉이는 휘문고-연세대를 거쳐 일본 요미우리와 메이저리그를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반면 현실 속 임선동은 해외 진출을 앞두고 이중계약 파문을 일으켰다. 임선동이 연세대 졸업반이던 1995년 일본프로야구 다이에 호크스(현 소프트뱅크)와 계약하자 그의 지명권을 갖고 있던 LG가 반발했다. 답답한 법정 공방이 2년간 이어졌다. 야구선수에게도 직업 선택의 자유를 인정해 달라고 주장한 임선동이 승소하긴 했으나 다이에가 계약을 포기하면서 LG에 입단했다.

 임선동은 프로 첫해 11승을 거둔 뒤 2년간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결국 그의 의지에 따라 1999년 현대로 트레이드됐고 2000년 18승을 거두며 공동 다승왕에 올랐다. 2000년부터 3년간 40승을 거둔 임선동은 계속 내리막을 겪다 조용히 은퇴했다. 이후엔 “임선동이 부동산 재벌이 됐다”는 풍문만 떠돌았다.

 임선동은 개인사업을 했다. 소문이 과장되기는 했지만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임선동은 2012년 덕수중을 맡고 있던 조 감독을 우연히 만났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나와 함께 아이들을 가르쳐 보자”고 조 감독이 그에게 몇 차례 권유했다.

매번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임선동은 “조 감독님은 학창 시절부터 존경하던 선배였다. 오랫동안 야구계를 떠나 고민이 많았지만 감독님을 워낙 좋아했기에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덕수중 코치를 맡았다.

 지난해 11월 임선동은 연세대 감독 채용 공고 소식을 들었다. 그는 “모교가 입시 비리로 인해 추락한 게 안타까웠다. 조 감독님이라면 소신껏 후배들을 지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감독님께 지원을 권했다”며 “주위에선 프로 지도자 경험이 없는 조 감독님이 선임되기 어려울 거라 했지만, 나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연세대 야구부의 명예는 땅에 떨어져 있다. 전임 이광은(59)·정진호(58) 감독이 입학청탁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연이어 불명예 퇴진했다. 그 때문에 이번 공개 채용 땐 ‘도덕성’을 특히 강조했다. 연세대 체육위원회 관계자는 “조 감독의 열정을 높이 샀고, 15년 동안 덕수중을 깨끗하게 이끈 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조 감독은 지휘봉을 잡고 다시 한번 임선동에게 코치 제안을 했다. 임선동은 “내가 코치 경력이 많은 게 아니었고, 몸도 불어 있어 자신이 없다”며 또 거절했다. 그러다 결국 선배의 손을 잡았다. “함께 좋은 야구, 착한 야구를 해보기로 결심했다”고 임선동은 말했다.

 임선동은 이중계약 파문, 다승왕 등극, 초라한 은퇴 등을 겪으며 거친 야구인생을 살았다. ‘제2의 선동열’로 평가받았던 그는 언젠가부터 ‘풍운아’라 불렸다. 그러나 프로에 오기 전 임선동은 드라마 속 칠봉이처럼 야구를 잘했고, 선배들에게 깍듯했다. 그래서 그가 ‘착한 야구’를 하겠다는 건 그리 이상하지 않다.

 “착한 야구는 진심의 야구다. 승패에 집착하지 않고, 아이들을 자식처럼 생각하고 그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조 감독님의 모습을 지켜봤다. 나도 야구계에 복귀한 만큼 ‘착한 야구’를 전파하고 싶다. 내겐 새로운 도전이다.” ‘칠봉이’ 임선동의 각오다.

김원 기자

◆ 임선동은=휘문고 재학 시절 조성민(신일고)·손경수(경기고)·박찬호(공주고) 등 동기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투수로 평가받았다. 연세대를 졸업한 뒤 1997년 당시 역대 최고 계약금인 7억원을 받고 LG에 입단했다. 99년 현대로 이적한 임선동은 2000년 다승·탈삼진 2관왕에 올랐으며, 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2007년 34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프로 통산 성적은 52승36패 평균자책점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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